찬송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540장(통21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 성탄절입니다. 본문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성탄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 즉 ‘은혜와 진리’라는 그분의 뛰어난 속성을 보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에서는 같은 개념을 다른 표현으로 ‘사랑과 공의’라고도 합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은혜’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는 사랑이나 인애로도 풀이됩니다. 은혜와 진리처럼 사랑과 공의도 서로 긴밀히 연결된 한 쌍의 속성입니다. 누가복음은 성탄 이야기를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요한복음은 ‘은혜와 진리’의 관점에서 각각 다룹니다.
요한복음이 강조하는 은혜와 진리는 기독교의 본질이 율법을 따르는 데 있지 않고 사랑과 진리에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신약학자 스콧 맥나이트는 그의 책 ‘예수 신경’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단순히 율법을 사랑(love of the law)하라고 요구하신 게 아니라 사랑 자체가 율법(the law of love)이 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쓰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율법으로 사람들을 얽매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 3:16)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으며 그분의 몸인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한국적인 정(情)이나 온정주의와는 다릅니다. 은혜와 진리, 사랑과 공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입니다. 서로 구별할 수 있지만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바탕으로 하고 공의는 사랑 위에 세워집니다. 사랑을 빙자해 공의를 희생시키는 값싼 온정주의는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경고한 ‘값싼 은혜’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교회에서 치리가 사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거나 타협한 결과입니다.
반대로 공의를 내세워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도 하나님의 정의를 왜곡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건은 사랑과 공의가 완전히 실현된 순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합니다.(6절) 베드로는 사랑이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말하지만(벧전 4:8) 이것이 불의를 눈감아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공의를 이루셨습니다.(롬 6:23, 히 9:22)
그리스도의 값비싼 은혜를 받은 우리는 모든 일에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며 이번 성탄절과 우리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기도 : 무정하고 불의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구현하신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그 놀라운 사랑과 공의를 구현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민영 은퇴선교사(전 국제위클리프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