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詩로 쓰는 성경 인물] <22> 라합

입력 2024-12-24 03:07

살몬, 그대를 보는 순간
내 그늘의 심장이 뛰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나는 사실보다 진실을, 진실보다 사랑을
그리고 당신이 가진 구원을 갖고 싶었죠
이방의 신전에서 춤을 추었지만
당신이 섬기는 야훼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폭풍처럼, 천둥처럼
내 앞에 나타난 당신
그 푸른 눈동자 속에 잠기고
헤브론의 백향목보다 더 곧게 뻗은 어깨에 기대어
당신과 함께 새 길을 떠나고 싶었지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모든 걸 던지겠어요
아, 살몬
죽음의 불꽃도 사를 수 없는 연모의 이름
여리고의 성벽을 타고 넘어온
금빛 구원의 향기.

소강석 시인·새에덴교회 목사

성경이 라합을 '기생'이란 명호로 기록하고 있지만, 기실 그 어의(語義)의 진폭이 매우 넓다. 동양의 한문 문화권에서 기생은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창부(娼婦)의 개념을 넘어, 시문 가무 음률에 능통한 사대부 선비들의 상대역이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기에 따르면, 라합은 '약속의 땅' 여리고에 거주하던 여인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에 앞서 정탐 온 2명의 남자를 숨기고 이스라엘 민족을 도왔다. 그러기에 신약성경에서는 신앙으로 살았던 성인의 한 예로 언급된다. 이 시에서는 라합이 '폭풍처럼, 천둥처럼' 나타난 살몬을 보고 사랑을 느낀 그 감정, 이성에 대한 연모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동시에 이스라엘 역사에 귀하게 기록된 의인의 모본(模本)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를 '여리고의 성벽을 타고 넘어온 금빛 구원의 향기'라고 불렀다.

-해설 :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