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재명은 안 됩니다’는 내용의 국민의힘 현수막 사용을 불허한 결정을 뒤집고, 게시를 허용키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에 조기 대선을 상정하고, 현수막 게시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낙선 목적의 사전선거운동이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선관위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스스로 ‘편향성’ 논란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관위는 23일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전체위원 회의를 연 뒤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부분은 단순한 정치구호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사회변화와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기간 위반죄’를 운용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선관위는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수영구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하자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에 국민의힘은 “탄핵 결정이 나지도 않았는데 선관위가 편파적이고 정략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반발했다. 선관위는 조국혁신당이 같은 지역구에 내건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 공범이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은 문제없다고 판단해 편향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기존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김 총장은 ‘현수막 불허 결정이 현재도 유효한가’라는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잠정적인 조치는 보류돼 있는 상태”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너무 섣부른 결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탄핵 재판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선관위가 인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조기 대선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에는 “그렇지 않다. 현수막 관련 내용이 법 위반이 있느냐는 의원실의 질의에 담당자가 법문만 검토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한편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는 이와 별도로 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에 대한 ‘내란공범’ 비판을 허위사실 유포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하기로 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내란공범’ 허위사실 유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현수막)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법률자문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법적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