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군기 문란은 충격적이다. 학연·지연으로 얽힌 사조직이 군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 정보사령부 현직 간부는 민간인 ‘비선’에 놀아나기까지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받아 작전을 지휘했던 장성들의 초반 모습도 국민들의 실망을 자아냈다. 추락한 군 기강을 어떻게 세울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충암파-대전파-육사로 대변되는 사조직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핵심인 윤 대통령(8회)과 김 전 장관(7회)은 충암고 1년 선후배 사이다. 여기에 김 전 장관의 ‘비선 문고리’로 불리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도 가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사조직 운용 의혹까지 받고 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23일 노 전 사령관이 ‘햄버거집 회동’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별도의 수사단을 꾸리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그가 중심이 된 ‘수사 2단’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햄버거집 회동 당시 노 전 사령관이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과 정보사 대령 2명 등에게 승진을 미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 등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실도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민간인 신분으로 계엄 작전을 지휘하고 인사권까지 행사하려한 셈이다. 노 전 사령관(육사 41기)과 문 사령관(육사 50기)은 각각 대전고와 대전보문고를 졸업하고 육사에 진학한 공통점이 있다. 특히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북한의 공격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표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 전 장관 등이 계엄을 위해 북한을 자극하려 했다는 주장과 맥이 닿는다.
계엄 사태 초반 보여준 장성들의 모습도 실망스럽다. 군 최고 지휘관인 장군들이 군 기밀과 정보 자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유출하는가 하면, 다른 부대도 아닌 특전사 여단장은 공개된 자리에서 울기까지 했다. 이를 본 북한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학연·지연으로 얽힌 사조직이 군 조직을 무력화하고 계엄까지 주도해 군을 다시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정권 안위를 위해 이용된 사조직을 과감히 도려내고 혁신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 삼아 대한민국의 군은 재창군한다는 각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헌법 가치를 되새기고 시스템과 문화, 인적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권력자와 사조직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만 보고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