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OTT·숏폼·웹툰까지 뻐끔뻐끔… 담배 권하는 미디어들

입력 2024-12-24 00:00
드라마 담배·흡연 노출률 82%
예능 58%… 웹툰도 52% 달해
“담배업계, 인터넷 미디어 규제
어려운 점 이용 직간접적 지원”
자율규제 유명무실… 대책 시급

<사진제공:국가금연지원센터, 각 매체 캡처>,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지난해 10월 공개된 드라마 시리즈 ‘이두나!’에는 여주인공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주인공의 잦은 흡연 모습은 편집이나 블러(혹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노출됐다. 일부 시청자는 “담배 연기 밖에 기억 안 난다”고 할 정도였다.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채널(종편), 케이블, OTT는 물론 최근 인기 높은 1인 미디어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담배·흡연 장면’이 넘쳐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콘텐츠는 드라마나 영화, 예능, 웹툰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OTT와 숏폼 콘텐츠의 흡연 장면에 청소년이 쉽게 노출되는 것으로 파악돼 업계의 ‘자율 규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가 지난해 7월~올해 6월 미디어 모니터링한 결과, 드라마 영화 예능 웹툰 속 담배·흡연 장면의 노출 비율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증진개발원은 2020년부터 미디어 채널과 콘텐츠별 담배·흡연 장면을 점검해 오고 있다. 이번에는 예능 부분에 대한 조사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드라마는 해당 기간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OTT 시청률 인기 순위 1~3위 총 39개 작품이 모니터링 대상으로 선정됐다. 영화는 개봉작 중 흥행 순위 상위 영화 70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상위 17개, 디즈니플러스 국내 개봉작 15개 등 총 102개 작품이 선정됐다. 예능은 채널별로 시청률 인기 순위 1위에 해당하는 12작품이 선정됐다. 웹툰은 네이버 연재 중인 작품 중 요일별 인기 순위 1~3위 21개, 카카오 구간 인기 순위 1~21위 42개 작품을 조사했다.

유튜브는 담배·흡연 콘텐츠를 다루는 주요 10개 채널의 영상 20개 내외(총 234개), 주요 10개 채널을 제외하고 담배 및 흡연 관련 키워드로 검색된 영상 중 조회 수 1000회 이상인 266개를 합쳐 총 500개 영상을 모니터링했다. 숏폼은 해당 기간 업로드된 영상 중 담배·흡연 관련 검색어로 나오는 영상 500개를 대상으로 했다.

드라마 10개 중 8개에 담배·흡연 장면

조사 결과 드라마 속 담배·흡연 장면 노출률은 82.1%(32개)로 나타났다. 제작 부수로 봤을 땐 571부 중 31.5%(180부)에서 흡연 노출이 있었다. 180부 중 채널별 노출률은 OTT가 63.5%로 가장 높았고 케이블(26.4%) 종편(18.8%) 지상파(14.7%) 순이었다. 드라마 흡연 장면 노출률은 2020년 65.2%에서 지난해 80.6%로 껑충 뛰었다.

영화 속 담배·흡연 노출률도 20년 60.0%→21년 43.6%→22년 36.4%로 감소세를 유지하다 23년 43.2%, 올해 53.9%로 반전됐다. 이번 조사 대상 102개 작품 가운데 흡연 장면이 나온 55편에서 흡연 노출이 1회 이상 나타난 영화의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가 80.8%로 가장 많았다. 청소년 관람불가(72.7%) 12세 이상 관람가(48.6%) 전체 관람가(5.3%) 순이었다.

웹툰의 흡연 장면 노출률 역시 20년 65.9%→21년 60.0%→22년 48.6%→23년 50.0%→올해 52.4%로 23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해 연재된 1700편 중 담배·흡연 장면이 노출된 경우는 55.6%(946편)였다. 흡연 노출이 1회 이상 나타난 웹툰의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50.0%), 청소년 관람 불가(27.3%), 전체 연령가(13.6%), 12세 이상 관람가(9.1%) 순이었다. 영화나 웹툰의 담배·흡연 장면이 청소년에게도 쉽게 노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처음 조사된 예능의 경우 12개 작품 중 58.3%(7개)에서 담배·흡연 장면이 노출됐다. 채널별로는 OTT가 47.2%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지상파(7.2%) 종편(6.5%) 케이블(0%) 순이었다.

담배·흡연 장면 조사 대상 유튜브 영상 500개 중 36.8%(184개), 숏폼 콘텐츠 500개 중 무려 93.6%(468개)가 모든 연령이 이용 가능한 경우였다. 길이가 짧은 영상인 숏폼의 경우 흡연 장면이 특히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됨을 알 수 있다.

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23일 “담배 및 흡연 장면 노출이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시청률을 위해 제작사 등이 흡연 같은 자극적 장면을 많이 삽입하고, 담배업계 또한 인터넷 미디어 규제가 어려운 점을 이용해 직간접적으로 이를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 콘텐츠 내 담배·흡연 장면에 지속 노출 시 청소년의 흡연 시도 및 욕구 유발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침은 여러 연구를 통해 규명됐다. 영화 속 흡연 장면에 100회 노출될 때마다 흡연자가 될 확률이 1.41배 높다는 보고가 있다. 또 전자담배 흡연 장면이 포함된 뮤직 비디오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자담배 사용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해외 일부 국가는 콘텐츠 내 흡연 장면을 최소화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불가피한 흡연 장면의 경우 영상 시작 전 혹은 흡연 장면 송출 시 금연 광고나 경고문구를 송출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0년부터 미디어 제작사와 전문가, 복지부 등으로 구성된 ‘흡연 조장 미디어 환경 개선 민관협의체’가 꾸려져 담배·흡연 장면 최소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아동·청소년 흡연 예방을 위한 미디어 제작·송출 가이드라인’을 공표하고 교육 콘텐츠 개발과 확산을 진행 중이다.

건강증진개발원 측은 “미디어 자율 규제 권고 기준을 공중파뿐 아니라 신종 매체로 확대 중이지만, OTT 등 외자사는 법적 규제가 어렵고 국내 매체의 경우도 창작의 자유를 들어 반발이 있는 만큼, 우선 국내 콘텐츠 제작자와 생산자를 중심으로 가이드라인 확산을 통해 인식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