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로제의 아파트에 편승하기

입력 2024-12-25 00:34

의미 있는 공간 찾는 목수도
편리한 집에서의 삶 즐거워
내가 짓는 아파트도 ‘안식처’

SNS만 켰다 하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APT.)’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말 줄 알았더니, 얼마 전엔 100만명이 여의도에 모여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를 외치더란 말이지. 유행에 꽤 예민한(?) 편이라, 편승하기로 했다. 아파트 얘길 해보겠단 거다.

난 목수다. 그냥 목수 아니고 ‘형틀목수’다. 복잡한 얘기 빼고, 형틀목수란 한마디로 철근콘크리트 건물 짓는 목수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뭐냐. 우리가 보통명사처럼 말하는 ‘회색 건물’이 바로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대표적인 게 아파트다. 내 경우 지난 7년간 종합병원, 대형 쇼핑몰, 공장 등도 지어봤다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 아파트 현장에서 보냈다. 지금도 지하 3층, 지상 최고 25층 11개 동 짓는 아파트 현장에서 일한다. 정리하면 ‘아파트 목수’란 얘기다. 그런 내가 ‘형틀목수로 살아가는 이유’에 관해 첫 책 ‘노가다 칸타빌레’에서 이렇게 밝혔다.

“형틀목수는 집 짓는 사람이다. 방도 만들고, 화장실도 만들고, 거실도 만든다. 계단도 만들고 베란다도 만든다. 어쨌거나 넓은 의미에서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형틀목수라는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난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고, 그건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선물하는 일이니까. (중략) 내가 만든 방이 누군가에겐 우울하고 힘든 날, 노래 크게 틀고 베개에 푹 파묻혀 울 수 있는 안식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내가 지은 집이 누군가에겐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그리하여 에너지가 꿈틀대는 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어쨌든 내가 만든 공간이 누군가에겐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의미일 거라고 상상한다. 집이 아닌 마음을 선물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망치질을 뚝딱뚝딱 하다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진정성 없는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게 24살 때 독립한 후로 아파트에 살아보지 않았다. 10여년 전에나 살아봤던(아파트에 산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아파트 지으러 다니면서 ‘마음’이니, ‘안식처’니 하는 얘길 떠들었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냔 말이다. 허허.

그러다 올봄 이사했다. 아파트로 말이다. 이곳에서 사계절 보냈다. 그리고 느꼈다.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지. 왜 또 그렇게 아파트값이 비싼지. 감히 말할 수 있다. 아파트는 21세기 집단지성과 과학이 빚어낸 최고의 창조물이라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참고로 24살에 독립한 후로 반지하 원룸, 옥탑방, 다세대주택, 투룸, 상가건물 3층 사무실 등에서 살았다. 창문만 열어두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에어컨 없이 여름 보낸 게 얼마 만인지. 대여섯 시간만 자도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다. 목욕탕 좋아했는데(정확히는 뜨거운 물에 몸 지지는 걸) 아파트로 이사 오고부터 안 다닌다.

요즘은 퇴근하고 집 오면 욕조에 물부터 받는다. 30분쯤 반신욕 하면서 책 읽는다. 피로가 싹 풀린다. 주차는 또 어떻고. 지난 15년간 자다 말고 “차 빼 달라”는 전화 받은 게 도대체 몇 번인지, 주차할 곳 없어 동네 뺑뺑 돈 건 또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다. 여기에 주변 인프라까지. 병원, 학교, 대형마트 등 걸어서 5분 거리에 모든 게 있다. 내가 이렇게나 완벽한 주거 공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새삼 깨달았다.

이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짓는 아파트 또한 ‘누군가에겐 우울하고 힘든 날, 노래 크게 틀고 베개에 푹 파묻혀 울 수 있는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리하여 나는 내 직업 ‘아파트 목수’에 좀 더 자부심 갖기로 했다. 다 같이 불러보자.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 Uh, uh huh uh huh.”

송주홍(작가·건설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