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내 정·재계 유력 인사 가운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을 가장 먼저 만났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재입성을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 ‘트럼프-정용진 회동’이 성사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불거진 외교·통상 공백이 리스크로 부상한 가운데 한·미 관계 구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인다.
정 회장은 2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만났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 초청으로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리조트에서 지난 16일부터 5박6일간 체류했다. 트럼프 당선인과는 10~15분간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 등이) 한국 상황에 관심을 보이면 ‘대한민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이니 믿고 기다려달라. 빨리 정상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그런 내용을 물어봐도 내가 답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정 회장은 머스크 CEO가 한국 상황에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었다”고 답했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왔다. 두 사람이 만난 것만 올해 들어 세 차례 이상이다. 이번 정 회장의 미국 체류도 애초 3박4일 일정이었으나 이틀 더 연장됐다. 마러라고 리조트 방문도 이번이 두 번째다. 트럼프 주니어는 차기 미국 행정부에서 공식 직책을 맡지는 않기로 했지만 막후 실세로 지목된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개신교 신자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몇 년 전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이날 “기업인으로서 트럼프 주니어와 여러 사업 구상을 했다. 이번에 트럼프 주니어가 많은 분을 소개해줬다. (그들과) 같이 사업 얘기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측근이나 대선 캠프 관계자와도 만났다고 했으나 머스크 CEO 외에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10~20% 이상 관세 부과 등을 공언한 가운데 미국 기업을 포함해 글로벌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정 회장이 대선캠프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재계는 “의미 있는 행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외교·통상 공백이 자명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인과의 ‘트럼프 채널’이 만들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네트워크의 시작을 정 회장이 연 셈”이라고 말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향후 대미 수출 등 비즈니스에서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한데, 그 네트워킹을 만들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며 “만남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정·재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한·미 관계에 있어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정 회장은 신중한 반응이다. 그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가교 역할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만남 이후로 신세계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회장은 수년 전부터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봐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식료품 시장 진출도 거론된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