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보수’ 기대 소나기 피하려는 與… 소탐대실 비판도

입력 2024-12-22 18:39 수정 2024-12-23 00:27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권 권한대행은 내란 특검법에 국정과 여당을 마비시키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속셈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주 기자

국민의힘 지지율이 ‘탄핵 격랑’에 휘말려 맥을 못 추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와 정치평론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여당이 보인 처신들을 민심 외면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국민의힘의 모습은 사과와 혁신보다 보수 ‘아스팔트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어정쩡한 사태 무마의 모습이었고, 이는 대외적으로 공감보다는 실망감을 준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여권이 취하는 태도의 기저에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있다. 당시와 달리 여당 지지도가 최악 수준으로 고꾸라진 것은 아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국민적 반감도 상당하다는 계산이 있는 것이다. 실제 2016년 말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집회가 계속됐던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지지도는 12%까지 추락해 지금의 국민의힘 지지도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다만 여당이 이 부분에만 큰 의미를 부여할 경우 향후 전국 단위 선거들에서 과연 유리할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여당이 좁아지는 이유

여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에 비판 목소리를 내지만 “내란죄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는 상당수가 유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여부 결정, 사법부의 내란죄 여부 판단이 있기 전에는 ‘광풍’ 같은 분위기를 재고해봐야 한다는 논리다. 윤 대통령 측은 야당의 국정 방해 행위들을 작심하고 열거한 지난 12일의 대국민 담화가 어느 정도 핵심 지지층의 결집을 이룬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 담화를 보고 “내란죄를 자백했다”고 평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당내에서 리더십 한계에 부닥쳐 직을 내려놓았다.

사법부의 판단 이전에 윤 대통령의 내란죄 여부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내란으로 볼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힘들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윤 대통령과 지시 관계로 묶인 주요 인물들은 빠짐없이 내란 관련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김석우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국회에서 ‘이것은 내란이 맞느냐’는 질문에 “내란 혐의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근거가 있다. 현재는 그런 상황”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과 관련자들의 행위가 내란에 해당한다는 여론은 70%를 넘는다. 다만 이 조사를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이번 비상계엄이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60%를 넘어선다. 이는 여당 입장에서 깊이 고려해야 할 현황이면서 한편으로는 맹점도 된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은 “당내 지지층은 중도적이거나 객관적 입장보다는 당파적 이익을 선호하는 지지층으로 사실상 재편돼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극단화의 착시

여당이 ‘소탐대실’의 오류에 빠져 있다면 그 주요 이유는 한국에 고착화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다.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8년 전보다는 선방 중인 여당 지지도에 대해 “최근 정당 지지율은 ‘기본 바닥’이 양당이 다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여당은 ‘야당과 차이는 나지만 우리 지지층은 큰 동요가 없다’며 버티는 모양새”라면서 “다만 비상계엄 사태를 방어해 주려는 지지층이 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여야 모두 정치적 성향이 분명해진 지지층이 두터워지며 나타난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수사가 진행됐던 당시와 단선적으로 비교하기에는 그 사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진 변수가 있고, 이러한 ‘무조건적 지지’를 크게 선해하면 곤란하다는 의미다. 여당의 속내와 달리 이번 사태가 국민들 틈에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45년 만의 계엄 자체가 주는 직관적 충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국민적 분노는 대통령의 무능에 대한 비판, 부끄러움, 어이없음 등이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받은 것에 대한 분노로 그 강도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여당의 선택은 현명한가

지금의 여당이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하고 혁신할 의지 자체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국민의힘은 현 상황을 민심에 의존해 풀려고 하기보다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에 의존하려고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간다는 결정을 해도 이후 일주일째 위원장을 못 세우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 원장은 “계엄 해제안 의결에 참여했던 여당 내 인사들이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정치적으로 배제된 모양새”라며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여당이 지금 이 사태를 반성하거나 달라질 생각보다 정반대의 길을 간다고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이런 여당의 태도를 두고 “당내에서의 생존과 당권을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국민 여론과는 부합하지 않고,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익과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임시방편적 모습”이라고 평했다. 윤 대표는 “‘소나기만 피해 가자’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총선을 통해 매서운 민심의 경고를 받고도 변한 게 없는 현 상황은 여권의 향후 전망도 어둡게 한다. 정 원장은 “안주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이 나뉘는 전환의 시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한국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모두 자기 세대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며 “현재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못 보고 있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