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체포, 구속을 요구하며 지난 21일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농민 단체가 경찰과 이틀간 밤샘 대치전을 벌였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까지 행진하겠다는 농민들에 맞서 경찰은 도심 교통 불편을 이유로 경기도 과천에서 서울 서초구 방배동으로 이어지는 남태령에서 트랙터 진입을 막았다. 22일 오후 야당의 중재로 경찰 차벽은 28시간 만에 치워졌고, 일부 트랙터는 용산 관저 앞까지 이동해 시위를 이어갔다.
전농 등에 따르면 농민들은 지난 16일부터 전남과 경남에서 각각 트랙터 행진을 시작했다. 21일 오전 수원시청 앞에 집결한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는 서울 광화문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낮 12시쯤 남태령 인근에 트랙터 행렬이 들어서자 서울경찰청은 전농 측에 집회 행진 ‘제한 통고’를 했다. 도심 교통 마비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경찰버스 4대를 동원해 차벽을 설치했다. 양측의 대치는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전농은 즉각 반발했다. 박원호 전농 회장은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트랙터와 집회 참가자들이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며 무리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전농 관계자는 “남태령과 용산 대통령 관저 인근까지 행진 신고를 모두 마쳤는데 갑자기 행진을 멈추라고 하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20시간 넘는 대치 상황에서 전농과 경찰 간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경찰에 항의하던 집회 참가자 2명이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돼 관악경찰서에 유치됐다. 다른 참가자 1명은 추운 날씨에 실신해 현장에서 응급 치료를 받기도 했다. SNS상에서는 한 운전자가 트랙터를 이용해 경찰버스를 들어올리려 하자 경찰이 트랙터 창문을 깨고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는 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전농의 대치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21일 밤부터 남태령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응원봉을 든 채 경찰 버스를 향해 “경찰은 차 빼라” “윤석열은 방 빼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 참가자를 후원하기 위한 음식 등이 현장에 전달되기도 했다. 남태령에서 밤을 새웠다는 시민 박모(32)씨는 “22일 새벽 2시부터 김밥과 국수 등이 배달됐다”고 전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경찰과 전농 측 중재에 나섰다. 22일 오후 4시30분쯤 트랙터 10대와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 차벽이 열리자 “우리가 이겼다”고 외치며 대통령 관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쯤 참가자들이 대통령 관저 인근인 한강진역 부근에 도착해 집회를 이어나가자, 약 2시간 뒤 트랙터가 도착했다.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참석한 집회는 추가 행진 없이 7시10분쯤 마무리됐다.
주최 측은 경찰 차벽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도 신청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