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은 기존에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화와 결이 다르다. 그동안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룬 영화들은 안중근의 곧고 강인한 모습, 어머니와의 일화, 하얼빈 의거와 재판 과정 등을 주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안중근의 내면을 조명한다. 그는 영화 내내 괴롭고, 외롭고, 두렵다. 독립운동이 한 명의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라 모두의 힘으로 완성된다는 걸 보여주고자 함이다.
안중근을 연기한 배우 현빈(사진)을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현빈은 “작업을 마친 뒤 후유증이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며 “촬영이 다 끝나고 소회를 담는 영상을 촬영할 때 왈칵 감정이 쏟아졌다. 아직 안 끝난 기분도 있고, 한동안 무언가 억누르고 있었던 것도 같은 낯선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영화는 안중근이 동지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의심받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포로로 잡았다가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 우두머리 모리 다쓰오(박훈)가 독립군을 습격해 동지들이 희생당한 탓이다. 영화에선 안중근이 거사를 앞두고 빛 한 줌 없는 다락방 구석에서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현빈은 “내가 안중근이라면 그런 상황에선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공간에 숨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영화에서 가장 나약한 안중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신이 아니었을까 한다”며 “최대한 움츠러들고 작아진 안중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엔 ‘시원한 한 방’이 없다. 하얼빈 거사는 안중근 혼자 한 일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군이 희생하고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걸, 이 일이 밑거름돼 남은 사람들이 여정을 이어간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중근은 말한다. 단 한 번의 거사로 독립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앞날도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해야 할 것이며, 올해에 못 이루면 내년에 다시 도모하고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나라를 되찾은 다음에야 (독립운동을) 그만둘 것이라는 그의 독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안중근이란 인물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현빈은 우민호 감독의 제안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현빈은 “무게감이 너무 커 감히 내가 표현할 수 없는 범주의 인물인 것 같았다.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감독님께서 수정된 시나리오로 다시 제안했고, 다시 거절해도 또다시 제안하셨다”며 “네 번째 말씀하셨을 땐 이런 기회를 얻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나중에라도 이런 기회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현빈은 “더 나은 내일”이라고 했다. 그는 “관객들이 현재 상황에서 떠올리는 것들이 있어 남다르게 느껴지실 것”이라며 “앞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영화 속 독립군들처럼) 한발 한발 신념을 가지고 가면 더 나은 내일이 오지 않을까. 우리는 계속 그래 왔던 거 같다”고 말했다.
현빈의 신념을 물었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아이를 낳고 가장이 되면서 어떤 좋은 아빠가 돼야 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더욱 고민하게 됐다”며 “배우로서 지키고 싶은 신념은 인기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되 거기에 파묻히지 않는 것, 작품을 할 때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