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탄핵 쇼크… ‘추경 딜레마’ 빠진 정부

입력 2024-12-23 00:19

경기 둔화 우려에 탄핵 정국 쇼크가 더해지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 역할론’에 동의하면서도 아직까진 내년도 본예산의 조기 집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조기 추경 요구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까지 공개적으로 재정 확대를 거론하면서 ‘경기 대응 추경론’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22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전체 세출예산(575조원)의 75%인 431조원을 상반기 조기 집행하기 위한 준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추경 여부는 내년 경기 상황 등 편성 요건에 따라 검토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재정법 제89조는 전쟁·재해·경기침체·남북관계 변화 등으로 추경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기재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내년 1월 예산 집행 준비를 충실하게 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민생 상황 등을 봐가며 적절한 대응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이 잇달아 재정 확대 목소리를 내며 경제 투톱인 최 부총리와 이 총재 간의 ‘추경 온도 차’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현재 재정은 긴축 수준이라 추경에 동의한다”고 발언한 이 총재는 다음 날에도 “경기 하방 압력이 큰 상황에서 추경 처리는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도 “추경 등을 여야가 합의해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통화 당국이 재정 당국에 지출 확대를 촉구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시장 일각에선 내년 1분기 전후로 10조원대 추경이 편성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추경 규모가 10조원을 웃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국회 제출 시기도 내년 1분기~2분기 초로 예상된다”고 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민생 안정이라는 정치적 필요성과 1%대 성장 방어라는 배경으로 인해 1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정치적 변수로 조기 추경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 향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조기 대선 등 정국 변화가 거세질 경우 정치권의 추경 논의도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선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새해 2월 추경’ 목소리를 냈지만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6월 11조원 규모 추경이 편성됐다. 새해 추경은 한국전쟁 시기였던 1951년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던 2022년 두 차례뿐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수요는 상반기까지 75%로 예정된 조기 집행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며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 통화정책 차원의 부양 조치가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