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등 GLP-1 약물, 단순 미용 목적 오남용 땐 심각한 부작용 우려”

입력 2024-12-23 18:06
위고비 주사 장면. GLP-1 기반 비만 치료제는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 등을 동반한 비만 환자에게 처방돼야 이익이 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위고비 같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계열의 비만 치료제로 국내에서 가장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5㎏/㎡ 이상이고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을 동반한 고령 환자군이다. 하지만 실제 처방 비율이 가장 높을 집단은 BMI 25 정도의 비만과는 거리가 먼 청장년 여성층이라는 게 문제다.”

“해당 약제가 목적에 맞게만 쓰인다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지만 올바른 대상에게 사용되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단순 미용 목적으로 오·남용하지 않도록 사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처방 의사들의 각성, 당국·학계의 촘촘한 모니터링이 따라야 한다.”

최근 대한당뇨병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당뇨병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당뇨병-비만 치료약,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의견들이다.

GLP-1은 음식 섭취 시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이다. 혈당 조절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인슐린과 반대 기능을 하는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개발됐다. 아울러 장운동을 억제해 포만감을 쉽게 유발하고 뇌에 가서 식욕을 억제함으로써 탁월한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돼 이후 비만 치료제로 만들어졌다.

대한당뇨병학회 박태선(전북대 의대 교수) 회장은 “한국에서는 당뇨병 관리에 꼭 필요한 GLP-1 성분의 저용량 주사 약제(오젬픽)와 경구용 약(리벨서스)이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도 제약사가 아직 국내에 출시하지 않고 있다. 반면 같은 성분의 비만 치료용 고용량 주사 약제만 수입돼 비급여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특히 고용량 주사제 사용이 늘면서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단지 체형 교정이나 미용 목적으로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위고비가 국내에 상륙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일부 부적절한 사용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박 회장은 “이런 약제들은 적응증, 용량과 기간 등을 의사 처방에 따라 명확히 정해서 사용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GLP-1 기반 약물들은 특히 당뇨병 환자들의 비만 치료에 유용할 수 있다. 당뇨병학회가 2021~2022년 통합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뇨 유병자의 절반(53.8%)이 비만, 61.2%가 복부 비만을 동반하고 있었다. 최근 급증하는 20·30대 당뇨 환자는 10명 중 9명(87%)이 비만, 84%가 복부 비만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노인 당뇨병 환자의 비만율도 44%에 달한다.

가톨릭의대 내분비내과 이승환 교수는 “당뇨 환자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혈당 조절뿐만 아니라 체중 조절 전략이 중심돼야 한다”며 “GLP-1 치료제는 기존의 그 어떤 당뇨 약제보다 당화혈색소(3개월간 혈당값) 감소와 체중 감량에 효과적임이 여러 임상연구로 밝혀진 만큼 향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미국당뇨병학회는 2024 당뇨병 치료 지침에 체중 조절을 중요한 목표로 정하고 선호해야 할 처방 약제로 GLP-1 제제를 명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최성희 교수는 “모든 신약이 그렇듯, 부작용 및 장기적 안전성을 모니터링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처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고비의 경우 부작용의 89%가 변비 설사 복통 등 위장관계 증상이고 급성 췌장염, 담석·담낭염 등이 보고됐다. 최근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최 교수는 “이런 부작용은 대부분 5년이 채 안 된 추적 과정에 관찰된 것이며 ‘오프 라벨(off-label, 허가 적응증을 벗어난 처방)’ 사용이라면 그 위험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이익이 가장 클 환자에게 처방돼야 약제의 ‘이익/위험비’가 증가한다”면서 “당뇨병, 심혈관질환을 동반한 BMI 35 이상 고도 비만자가 위고비 처방에 가장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이런 고도 비만자의 상당수는 새로운 치료제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반면 비만하지 않고 건강한 사람들이 미용 목적으로 더 원한다는 게 우리 현실”이라며 “목적에 맞는 처방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