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주 전이 어땠는지 아득할 정도로 12·3 비상계엄 이후 다른 세계에 사는 느낌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엄 해제안 의결, 대통령 탄핵안 무효, 다시 탄핵안 가결까지 수많은 뉴스들이 3주간 롤러코스터를 탄 듯 휘몰아쳤다. 쏟아지는 뉴스에 눈과 귀를 뺏긴 탓인지 성탄이 가까웠어도 캐럴은 들리지 않고 한 해의 끝인지도 실감나지 않는 어수선하고 불안한 연말이 지속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발등에 떨어진 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한국 경제는 그전에도 충분히 힘들었다. 비상계엄 선포 닷새 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리면서 내년, 내후년 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구조적 요인에 따른 수출 감소 경향이 짙어졌고, ‘트럼프 2기’ 등장에 따른 불확실성이 예상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결론이었다. 연초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어 2.5%(5월 23일)까지 올라갔던 올해 성장률 예측도 2.4%(8월 22일), 2.2%(11월 28일)로 내려갔다.
낮아지는 성장률 전망과 반비례해 한국 경제에 대한 문제 해결 요구는 그만큼 거셌다. 멀게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구조개혁, 가깝게는 트럼프 2기 출범 전 대책 마련을 위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한 지적과 제언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골든타임이 누군가에게는 비상계엄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음이 뉴스를 통해 하나둘 알려지고 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도 골방에 모인 몇몇은 비상계엄을 계획했고, 그 중심엔 대통령이 있었다.
이번 사태는 2.2%가 마지막일 줄 알았던 올 성장률 전망을 0.1% 포인트 더 낮추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보름 만인 지난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이 2.1%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보름 사이 0.1% 포인트 낮아진 것 자체도 큰 충격이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한국 경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 해결해야 할 시간에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과 그 주변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상황을 예비했고, 그 뒤치다꺼리에 국가의 역량이 소진된 대가를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해 포브스에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비상계엄 대가는 5100만 국민이 시간을 들여 지불할 것”이라고 쓴 윌리엄 페섹의 칼럼은 그간 한국 경제에 드리워진 저성장의 공포를 다시 상기시킨다. 일본식 장기 침체를 다룬 책 ‘일본화(Japanization)’를 쓴 그는 이 칼럼에서 비상계엄이 그간 한국 경제의 안일함과 맞물리면서 일본식 장기 침체로 갈 가능성을 높였다고 지적했다. 국내 현안에 대한 외부 시선이 얼마나 정치하고 깊이 있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과 나란히 언급되는 것 자체가 대외 신인도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잖을 것 같다.
비상계엄 이후 한국 경제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정치와 경제의 분리다. 경제 현안 해결이나 정책 집행은 정치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국내외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비상계엄 사태에서 봤듯 경제가 정치와 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허하게도 들린다. 일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 혼란이 수습되지 않는 한 경제도 살얼음 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해법의 실마리도 우선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버티기에 들어간 대통령부터 여전히 타협 대신 갈등을 택하는 정치권의 모습에서 아직 상황을 낙관하긴 어려워 보인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