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시 2층 침대를 사용했는데 야구부원들이 맞을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어야만 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무턱대고 이사장실을 찾아갔다. 문을 ‘똑똑’ 두드리자, 너머에서 “들어와”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사장님 근데 매달 10만원씩 준다고 해놓고 왜 안 줘요. 내가 지금 학교 온 지 2~3개월이 다 돼가는데 이사장님 거짓말하고 약속 안 지켜도 되는교.” 나는 따지는 투로 얘기했다. 이사장님도 어른이 그랬다면 혼을 냈을 텐데 한참 어린 학생이 그러니 너그럽게 대해 주셨다. “경주야, 미안하다. 학교 재정이 참 어렵다. 니가 조금만 이해해주면 안 되겄냐. 내가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까 몇 개월 치는 주마.” 이사장님은 직원을 불러 밀린 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나저나 너 지내는 데 어려움은 없냐.” 안 그래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이사장님이 먼저 물어봐 줘서 다행이다 싶었다. 고자질할 수는 없으니 직접 얘기하지 않고 돌려서 설명했다. 당시 운동부원 사이에서 ‘최경주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기류 같은 게 흘렀었다. 하나님 만나기 전이라 험한 말도 쓰고 몸이랑 힘도 훨씬 좋았다. 얼굴은 또 어찌나 우락부락했는지 믿음이 없을 때라 인상이 악마 같았다. 야구부 감독도 나를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
“제가 한 몇 개월 살아 보니까 야구하고 골프는 전혀 다르대요. 종목 성격도 다르고 생태도 다르당게요. 먹는 것부터도 너무 달라서 저는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끼리 있어야 되겠당게요.” “그라믄 어떻게 하면 좋겠냐.” “저기 밑에 김포 골프 연습장이 있는데 우리 선배 아버지가 거기 사장님이에요. 저 그냥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골프도 치고 할 테니께 편의 좀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학업과는 담을 쌓았었다. 수산고 기계과에서 갑자기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니 교과서부터 달랐다. 쓱 훑어보니 이건 내가 따라갈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었다. 마치 유치원생한테 성경을 주면서 공부하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이해도 안 됐다. 나는 ‘도대체 이게 뭔 말인 걸까’ 하면서 시간만 보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이사장님과 담판을 짓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골프 선수가 되기로 작정했으니 저를 믿고 수업에서 해방시켜주면 학교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해볼랍니다.” “니가 정 그러면 그렇게 해라.” 이사장님은 골프연습장 사장님을 만나 “우리 경주가 여기서 운동 할 수 있게 편의 좀 잘 봐주시오”하고 부탁하셨다. 이사장님은 학교에서 가까운 골프연습장에 숙소를 마련해주셨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도 할 수 있고, 개인 지도를 하는 프로 골퍼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공부가 됐다.
하지만 기대만큼 대회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았다. 자신감 하나로 버티며 ‘골프 괴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