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중 전반부인 42절부터 45절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이 성령을 가득히 받아 외친 말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단어는 “복되다”입니다. 처음과 끝이 “복되다”는 말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는 복된 두 여인의 이야기로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입니다. 한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다른 한 분은 세례 요한의 어머니입니다. 이 두 여인이 특별한 까닭은 태중의 아기가 복되기 때문이며, 또한 이 두 여인의 존재 자체가 복되기 때문입니다. 두 여인은 의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열심히 행하는 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우리는 의무라고 부릅니다. 고대인들은 사람에게 두 가지 큰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입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의무인데 이것을 정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와 정의로움.’ 이 두 가지 의무는 서로 의존적입니다.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아기를 잉태하게 하시고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게 하셨습니다. 의로운 삶이 복을 불러왔고 한 여인은 한 소리를 품게 되었고, 또 한 여인은 말씀을 품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품에 모신 사람의 변화는 무엇일까요.
첫째로는 기쁨입니다. 마리아는 기쁨에 겨워서 자신의 기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불가능한 것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희망에 차올라 기쁨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문안을 받은 엘리사벳 또한 감격합니다. 엘리사벳의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둘째로 말씀을 품에 모신 사람은 하늘의 비전을 깨닫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보십시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를 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연약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권력자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비전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날 하나님 나라 비전입니다.
셋째로 말씀을 품에 모신 사람은 어떤 고난도 감내합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자식이 죄인으로 지목되어 끔찍하게 처형되는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자식들이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이 두 여인에게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예리한 칼에 찔리는 것 같은 단장의 아픔을 감내했고 세상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됐습니다.
유다 땅에 어둠이 깊게 드리웠을 때 한탄과 걱정과 신음이 가득한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시름 한가운데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맞이하러 달려갑시다. 그리고 우리 안에 말씀을 품고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 마리아가 됩시다. 참으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처럼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국충국 사제(대한성공회 대전 성남동교회)
◇국충국 사제는 대한성공회 대전 성남동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습니다. 국 사제는 ‘작은 교회, 수덕하는 교회, 녹색 교회’가 되길 소망하며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