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의 해양 이야기] 온난화에 동력 잃어가는 ‘지구 열염순환 컨베이어 벨트’

입력 2024-12-24 00:35

열대 해역·극지방 간 해수 심층 이동
한 번 순환하는데 1000년 이상 걸려
붕괴 땐 급격한 지구 기후 큰 전환점
이미 경고등 켜져… 탄소 배출 줄여야

미국에서 발행되는 잡지 ‘자연사(Natural History)’ 1987년 10월호에 ‘대양 컨베이어벨트’라는 이름의 해양순환 모식도가 실렸다. 컬럼비아대 지구화학자인 월리스 스미스 브뢰커가 작성한 영거 드라이아스기에 관한 기사에 포함된 삽화였다. 영거 드라이아스기란 마지막 빙하기 후 온난화가 진행되던 중 일시적으로 빙하기 상태로 되돌아간 시기를 가리킨다. 지금부터 약 1만2900년에서 1만1700년 전 사이이며 구석기 시대의 끝 무렵에 해당한다.

컨베이어벨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의 시작은 대서양 북쪽에서 시작한다. 컨베이어 상부에서는 열대 해역에서 따뜻하고 염분이 높은 물이 북쪽으로 유입된다. 이 해수는 북쪽에서 오는 차가운 공기를 만나 냉각되며, 냉각된 해수는 밀도가 증가해(무거워져) 깊은 곳으로 침강한다. 이어 하부에서 남쪽으로 흘러 대서양 심해의 대부분을 채우는 물 덩어리가 된다.

월리스 스미스 브뢰커가 작성한 ‘대양 컨베이어벨트’ 모식도. 미국 잡지 ‘자연사(Natural History)’ 1987년 10월호에 실린 것으로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에 걸친 표층난류수와 심층한류수의 흐름을 보여준다.

해양학자들은 이 물 덩어리를 ‘북대서양심층수’라고 명명했다. 북대서양심층수는 대서양 남쪽에서 남극 대륙을 둘러싸고 흐르는 거대한 남극순환류와 합류해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유입되고, 바람에 의한 용승이나 매우 약한 수직 혼합 과정을 거치면서 표층으로 이동한 뒤 북대서양에 도달해 컨베이어벨트를 완성한다. 이 순환을 작동시키는 동력은 해수의 밀도 변화에서 나오며, 밀도 변화는 수온과 염분의 변화에 따라 발생한다. 해양학에서는 이 심층 순환을 ‘열염순환’이라고 부른다. 브뢰커의 그림은 남극해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았지만 열염순환을 유지하는 데 해양과 대기 간 연결이 중요함을 간단하게 상징하는 매력이 있다. 수온과 염분 변화는 모두 열과 물 교환이라는 해양과 대기의 상호작용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극 대륙 주변에서도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해수가 생성된다. 해빙이 없는 해역에서는 찬 대기의 영향으로 강한 냉각이 일어난다. 해빙이 형성되는 곳은 소금 성분이 배출되면서 주변 해수의 염분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밀도가 높아져 침강하게 된다. 이 물 덩어리를 ‘남극저층수’라고 부르며, 침강 후 남극순환류를 타고 동쪽으로 흐르고 전 대양의 북쪽으로 확장된다. 대서양 심해에서는 북대서양심층수와 공간을 놓고 경쟁하게 되는데, 남극저층수가 더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어 아래쪽에 분포한다. 이는 해수면 염분이 북대서양보다 남극 대륙 주변에서 더 높기 때문이다. 극지 해역에서 심층수 형성에 온도와 염분이 함께 작용하지만 밀도 크기를 결정하는 데는 염분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태평양 해수면 염분은 북대서양보다 낮아 아무리 추워도 가라앉을 만큼 무거운 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태평양에서는 심층수 형성을 볼 수 없는 이유다.

열염순환은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한 번의 순환에 걸리는 시간은 1000년 이상이다. 해수의 수직 침강 속도는 특히 느려 현재의 측정 기술로는 관측하기 어렵다. 이론 기반의 간단한 모델에서는 심층수 침강 속도를 하루에 약 1㎜로 추정한다. 100m 침강에 274년 걸리는 속도다. 표층 해류의 속도는 대체로 초당 0.1~1m, 심층 해수의 흐름 속도는 표층의 100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다. 2019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느린 순환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서는 지금부터 150년 전의 챌린저호 탐험 관측자료와 최근에 수집된 자료를 이용해 순환 모델을 연구한 결과 태평양 심층에서 섭씨 0.02~0.08도의 냉각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냉각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계속될 것이고, 냉각의 이유는 태평양 심해가 약 1300년부터 약 1850년까지 진행된 소빙하기 영향을 아직도 받는 것으로 해석했다. 현재 대기와 해양 상층은 온난화되고 있지만, 느린 열염순환의 영역인 대양 심층 일부는 소빙하기의 반응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기후변화도 열염순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의 얼음이 녹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변 심층수 형성 해역의 표층 해수 염분이 낮아지고 있다. 그 결과 심층수 형성이 감소하고, 컨베이어벨트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심층수 형성이 중단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만약 열염순환이 붕괴된다면 이는 급격한 지구 기후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컨베이어벨트의 핵심인 지구 기후 시스템의 열 이동 형태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와 연구 결과들은 북유럽 날씨부터 열대몬순기후, 심해의 산소 공급과 해양 생태계, 강수 패턴에서 물 자원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영향을 예상하고 있다. 북미대륙의 빙상이 녹아 흘러온 대량의 물이 심층수 형성을 방해해 일어난 영거 드라이아스기는 열염순환의 붕괴로 인한 기후변화가 얼마나 급격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선례다.

이제 ‘대서양 자오면 순환’(Atlantic Overturning Circulation·AMOC)’이라고 불리는 컨베이어벨트 북대서양 영역의 미래는 점점 불안한 주제가 되고 있다. AMOC 약화와 관련된 논문들이 계속 발표되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멕시코만류 모니터링 자료는 지난 수십년 동안 AMOC의 강도가 점진적으로 약화됐음을 시사한다. 통계 기법과 모델링을 통한 일련의 연결 결과들은 AMOC가 이미 붕괴 과정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기후학자들은 이 붕괴가 지금까지 알려진 기존 예측보다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되돌리기 어려운 AMOC 붕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붕괴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