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초보운전은 무척이나 두렵고 어려운 것투성이지만 장롱면허 신세를 청산하고 운전대를 잡자 많은 것이 달라 보인다. 그동안 한없이 멀게만 여겼던 장소들이 기동력이 생기자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보행자들,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이 단단하고 커다란 기계들에 비해 얼마나 연약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운전을 하면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노을이나 강물 같은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옆자리나 뒷자리에 탔을 때는 몰랐던 것이다.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간 내가 탔던 차의 운전자들이 동승자를 얼마나 배려하고 보호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탔을 때 놀라거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하는 마음, 주차를 하기 전 목적지에 먼저 내려주는 마음,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는 마음 같은 것들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세심함이 필요한지 그동안에는 잘 몰랐다. 나는 내가 의식도 못했던 새에 정말 많은 배려와 보호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거의 노인이 된 나의 부친은 요즘도 기회가 되면 운전해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에는 데리러 오려 한다. 이 복잡한 서울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얼마 전에는 길에서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를 묻어줬다. 우연히 가방 속에 장갑이 있어 직접 묻어줄 수 있었다. 죽은 고양이는 아직 따뜻했다. 함께 있던 친구들과 고양이 무덤 앞에서 눈을 감고 기도했다. 걸음보다 빠른 속도를 얻는 대가 중 하나는 내가 운전하는 차의 바퀴로 숱한 생명을 죽이고도 모르게 되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작은 동물과 벌레들이 차바퀴 아래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서 생을 마감했을지 떠올려 보면 아찔하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보다 약한 생명에게 어쩔 수 없이 많은 폭력을 감행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나의 편의가 많은 생명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