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힘도, 국민도 없는 국민의힘

입력 2024-12-23 00:38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의원들
'이재명 불가론'으로는 궁색
기득권 지키려는 얄팍한 꼼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국민의힘은 당명부터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전까지 여의도 정치권에는 ‘더불어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국민의힘에는 힘이 없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회자됐다. 그런데 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행태를 보면 힘만 없는 게 아니라 국민도 안중에 없는 듯하다.

물론 국민의힘 정치인들도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보면 비상계엄 사태는 대다수 국민의힘 인사들이 사전에 눈치채지 못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로 보인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여당 의원들의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도 예상치 못한 사태에 허둥지둥하는 의원들의 모습들이 여실히 엿보인다.

하지만 사태 이후부터 지금까지 국민의힘 모습은 ‘계엄 동조세력’이라는 비아냥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사전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오밤중에 정치 활동 금지를 명령하면서 국회의사당에 무장 군인을 보냈고, 그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에 난입했는데 입법부 구성원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금껏 여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않았다. 반면에 탄핵을 주장한 한동훈 전 대표나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에게는 ‘배신자’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대다수 민심과 정반대 방향의 ‘선택적 분노’다.

여당 의원들의 이런 반응 이면에는 ‘탄핵 트라우마’ 영향이 클 것이다. 하룻밤 새 벌어진 일로 8년 만에 또다시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것은 이번 계엄 사태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2016년 당시 국민이 느끼는 집단 정서가 분노와 실망감이었다면 계엄 사태는 국민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70% 넘는 압도적 탄핵 찬성 여론은 저 불안한 지도자가 군 통수권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리스크라는 공감대에 기인했다. 게다가 윤 대통령 스스로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당에 일임하겠다’(12월 7일 대국민 담화)고 해놓고서 불과 5일 만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을 바꾸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85명(78.7%)이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계엄 전까지는 민주당을 ‘방탄정당’이라 부르면서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추천을 촉구했던 국민의힘이 계엄 이후 대통령 방탄에 골몰하고 헌법재판관 임명까지 어깃장을 놓는 등 자기 부정과 민심 역주행만 거듭했다. 과거 탄핵 때와 거꾸로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상황 판단 탓이다.

여권이 탄핵 반대 논리로 내세운 ‘이재명 불가론’도 계엄 탓에 궁색해졌다. 여러 혐의로 재판과 수사를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건 분명 문제다. 그런데 그것을 국민의힘이 지적하는 순간 설득력이 확 떨어진다. 이 대표의 혐의들은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나 안보를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의 ‘계엄 급발진’은 환율 급등과 안보 불안 등을 야기했다. 하마터면 민주주의 시간표를 45년 전으로 되돌릴 뻔한 이 무모한 시도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이미지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가볍게 보이는 착시효과는 윤 대통령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에게 비판도, 징계도 안 한 정당이 이 대표 불가론을 주장한다니.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을 방패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얄팍한 꼼수처럼 보인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이 대표가 정권을 잡고 어떤 일을 빌미로 계엄을 선포한다면 국민의힘은 이를 저지할 수 있을까. 일단 국회 과반 의석이 안 되니 자체적으로 계엄 해제를 결의할 힘이 없다. 윤 대통령의 부당한 계엄에 확실히 선을 긋지도 않았으니 그때 가서 국민을 들먹이며 계엄 해제를 호소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설마 그럴 리 있겠냐고? 12월 3일 밤 10시까지만 해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윤 대통령이 열었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