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기도의 열기로 가득하다. 600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나라와 민족, 그리고 각자 기도제목을 가지고 밤을 지새운다. 금요철야예배(금철) 하이라이트는 설교 직후 청소년 수백 명이 강단 앞으로 몰려와 저마다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소년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금철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열리는 금철을 위한 중보기도도 독특하다. 교육관에서는 같은 시각 4~7살 아이들이 기도한다. 이렇게 온 교회의 기도 불꽃은 새벽 1~2시까지 타오른다. 지난 12일 교회 담임목사실에서 만난 이규현 목사는 “온 성도들이 함께 밤을 뚫어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수영로교회의 금철은 최근 국민일보 기독교브랜드 대상 리딩 부문을 수상했다. 다음은 이 목사와의 일문일답.
-지금의 금철이 어떻게 정착됐는지 궁금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수영로교회는 원래 기도하는 교회였다. 목회자와 성도들은 기도를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붙잡고 지속적으로 기도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철야기도를 강조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모여 기도하다 보니 기도의 불씨들이 생겼고 불씨가 점차 번지면서 감동과 은혜의 불길이 됐다.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다.”
-수영로교회 금철의 특징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틀은 있다. 저녁 9시에 모여 40분 정도 찬양하고 또 30분 정도 통성으로 합심 기도를 한다. 이때 기도는 우리 교회나 개인 기도제목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공통 주제다. 이렇게 큰 주제나 이슈들을 가지고 기도한 뒤 말씀을 듣는다. 1시간 정도의 설교가 끝난 다음엔 본격적인 기도를 시작한다. 선포된 말씀을 붙잡고 자유롭게 기도한다. 이때 기도의 불이 붙는다.”
-탄핵 정국 속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가 간절할 것 같다.
“교회는 정치적 이념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교회가 가진 기본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나라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 죄들을 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시는 분이다. 국가가 분열되지 않고 더 좋은 길을 찾아가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한다.”
-수영로교회 금철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나온다.
“전 세대 통합 기도회라 할 수 있다. 누가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다. 주말엔 아이들이 지쳐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학원을 마치고 철야기도회에 나온다. 교회는 이런 아이들을 환대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이는 곳에 잘 안 가려고 한다. 그런데 자신들을 존중히 여기는 곳에는 모인다. 나는 아이들을 존중한다. 그래서 모든 집회의 첫 시작을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는것으로 한다.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성도들은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친다. 아이들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철야기도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업어주고 칭찬할 일이다.”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환대받는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어른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사실 꼰대를 싫어하지 어른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좋은 어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런 어른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금철은 그런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기도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기도 공동체의 VVIP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아이들 중에 장차 역사적 인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의 시간들을 이어갈수록 응답의 열매들도 풍성하겠다.
“성도들은 엄청난 응답을 받는다. 말씀을 통해 응답받고 기도제목을 통해서도 응답받는다. 요즘 우울증이 얼마나 많은가. 우울증은 상담을 아무리 받아도 해결이 안 된다. 그런데 금철의 기도 열기 속에서 은혜의 파도를 맞으며 말씀과 기도에 푹 젖는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치료도 일어나고 또 여러 삶의 문제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이 생긴다. 현대 사회 자체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금철은 그런 현대성이 주는 문제를 다 녹여버리는 영적 용광로 같다.”
-기도는 신앙의 본질이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기도를 프로그램으로 삼고 교회 운영의 도구로 수단화시킨 측면이 있다. 기도가 만약 프로그램이라면 또 다른 프로그램에 의해 바뀔 것이다. 하지만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는 초대 교회 때부터 말씀과 함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적으로 힘썼다. 성경 전체를 꿰뚫어 봐도 기도를 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기도가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기도하셨다. 기도를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기도였다. 한국교회가 언제부턴가 기도를 빼버리니 힘을 잃었다. 기도회는 있지만 기도는 없다. 심지어 기도를 지성적이며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기는 풍조까지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재앙이다.”
-교회가 왜 기도를 잃어버렸다고 보는가.
“세속화와 물량화, 그리고 영적 자만심이 그 원인이라고 본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배부른 만족 때문에 영적 갈망이 사라지고 영적 나태가 왔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기도를 하지 않는다. 사실 기도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떻게 하면 다시 기도를 회복할 수 있는가.
“고난이나 시련을 만나야 한다. 한국교회가 어려워지면서 요즘 철야기도가 많이 살아나고 있다. 사람은 어려워야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매달리게 돼 있다. 궁지에 몰려야 기도한다. 기도는 절박함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번영이나 성공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마음이 더 가난해져야 한다.”
-이미 받은 축복, 주신 번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축복을 이기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번영 신학, 기복주의 신앙의 폐해이다. 자기 배를 채우라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 게 아니다.”
-수영로교회 금철은 설교 시간도 매우 중요하다.
“기도운동의 역사를 보면 은사주의로 흐르고 그 은사는 개인적인 것으로 사유화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기도운동은 항상 말씀과 같이 가야 한다. 말씀 없는 기도는 오래 못 간다. 말씀이 없으면 기도는 길을 잃는다. 그러기에 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금철에서 설교에 1시간을 쏟아붓는 이유다. 철야기도회를 하니 기도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금철 설교 역시 주일예배 설교 비중과 똑같이 여긴다. 말씀이 있어야 기도의 방향이 잡힌다. 말씀을 가지고 기도할 때 기도는 강력해진다. 말씀 없는 기도는 지친다. 답이 없는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기도에 불이 붙고, 기도에 불이 붙는 가운데 말씀이 내면에 체화되고 삶으로 연결하는 믿음을 심어준다.”
-목사님의 기도 생활이 궁금하다.
“대부분 목회자처럼 기도한다. 새벽 기도를 비롯해 꾸준히 개인기도 생활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과거엔 기도원도 많이 갔고 금식도 자주 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기도했다. 목회자로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눈물을 주셨다. 그런 절박함을 통과하니까 기도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도 따로, 삶 따로는 없다. 마찬가지로 기도 없는 목회는 불가능하다.”
-교회 역사 속에서 목사님이 꼽는 기도의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쓰셨다. 영국의 리즈 하월즈는 탁월한 중보기도자였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와 부랑자를 위해 기도하며 친구로 삼았다. 하월즈는 광부로 일하기도 했는데 그는 광부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탄광생활을 정리한 뒤엔 하루 3시간 기도, 2시간 성경 읽기를 반복했다. 그는 기도하다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고 선교의 열매를 맺었다.
미국의 목사이자 저자인 AW 토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시대의 예언자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소박한 삶을 살았는데 한 번도 자동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 저명한 기독교 작가가 된 후엔 인세 수익 대부분을 기부했다. 토저의 자서전 작가인 제임스 스나이더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도는 토저에게 기필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설교와 글들은 그의 기도 생활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케임브리지 7인의 한 사람인 CT 스터드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부와 명예를 버리고 전 생애를 중국 미국 인도 중앙아프리카 등 세계선교에 인생을 바쳤다. 그는 새벽 2시면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했는데 태양이 등을 비추어 땀으로 젖을 때까지 기도했다고 한다. 수영로교회를 설립하신 정필도 목사님 역시 기도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중요한 고비가 올 때마다 기도로 승부를 걸고 응답받았다. 우리 믿음의 선대들은 삶이 곧 기도였다.”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는 어떤 역할을 할까.
“한국교회의 위기는 상황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은 딱 한 순간이다. 기도하지 않는 순간이 위기다. 기도하는 인생은 다르다. 기도하는 가정, 기도하는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기도는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인생이다.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온 세대가 함께 모여 기도로 밤을 뚫어내야 한다.”
부산=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