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대통령 권한대행, 고건과 한덕수

입력 2024-12-21 00:40

우리나라에서 관운(官運) 좋기로는 고건(86) 전 국무총리가 으뜸이다. 고 전 총리는 23세에 공직에 입문한 뒤 37세에 최연소 도지사(전남)를 지냈고 장관 세 번, 서울시장 두 번, 총리를 두 번 했다. 국회의원, 대학 총장 자리도 거쳤다. 박정희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7개 정부에서 고위 공직에 올라 별명이 ‘행정의 달인’이다. 국회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을 때 총리로서 두 달간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기도 했다.

한덕수(75) 대통령 권한대행의 여정이 묘하게 고 대행과 비슷하다. 차관, 장관, 부총리에 외국대사를 두 번 하는 관운을 누렸다. 총리 두 차례에 권한대행을 역임한 것도 같다. 권한대행으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둘뿐이다. 고향(전북), 고교(경기고) 선후배에 2004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조정실장 콤비로 국정을 이끌었다.

다만 정치적 여건 차이로 비슷한 행로는 여기까지일 것 같다. 고 대행은 야당의 지지를 듬뿍 받았다. 야당은 고 대행 체제의 ‘안정성’과 노 대통령의 ‘불안정성’을 대비해 탄핵안 가결을 합리화하려 했다. 반대로 청와대와 여당이 고 대행을 은근히 견제하곤 했다. 희한한 구도 속에서 고 대행은 안정적 국정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2004년 3월 말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고 대행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79.4%였다. 그해 말 각 언론사가 뽑은 차기 대통령 후보 선호도 1위에 올랐고 본인도 실제 출마를 검토했다.

한 대행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19일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은 “한 대행 탄핵 검토” 운운했다. 소수 여당이 힘이 되지도 못한다. 20년 전 탄핵 사유(공직선거법 위반)와 차원이 다른 계엄 사태에 국민 분노가 큰 탓일 게다. 고 대행과 같은 인기를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한 대행은 “현 상황의 조속한 수습이 제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라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동적, 독불장군식 국정 운영과 다른 안정감만 보여줘도 유종의 미가 될 것 같다. ‘마지막 소임’이 잘 완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