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 송영숙 회장 등 모녀 측이 앞서나가고 있다. 지난한 오너일가의 다툼에 마침표가 찍힐지 관심이 쏠린다. 1년간 지속된 분쟁으로 임직원 280명 이상이 퇴사하고 수익성이 악화하는 등 경영상 위기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19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한양정밀 회장) 해임 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해임을 전제로 하는 박준석·장영길 사내이사 선임 건은 자동폐기됐다.
오너일가인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번 임시주총을 통해 모녀 측 박 대표와 신 회장을 해임하고 한미약품 이사회에 다른 두 사람을 진입시키려고 했지만,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 이사회는 모녀 측 6명, 형제 측 4명 구도를 유지하게 됐다. 앞서 지난달 열린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에서는 모녀 측이 절반의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애초 모녀 측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도를 기존 4대 5에서 6대 5로 뒤집지는 못했지만 5대 5 동수로 이사회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가족 간 마찰은 지난 1년 내내 계속됐다. 갈등은 2020년 8월 임성기 회장이 별세한 후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가 발생하면서 불거졌다. 재원 조달 방안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던 탓이다.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가 된 임 회장의 아내 송 회장과 딸은 올해 1월 글로벌 소재·에너지 전문기업 OCI그룹과 통합을 위한 절차를 추진했다. 하지만 두 형제가 이 방안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형제 측은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인 신 회장의 지지를 얻으면서 OCI그룹과 통합을 무산시켰다. 이로써 형제가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으나, 7월 들어 신 회장이 모녀 측으로 돌아서면서 갈등이 재점화했다. 신 회장은 3자 연합을 구성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양측은 서로를 고소·고발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는 동시에 여론전 수위도 높였다. 이후에는 임시주총을 열고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오너일가의 집안싸움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직원들과 소액주주들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 8월까지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에서 280여명의 퇴사자가 발생했다. 이직 러시는 현재진행형이다. 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소액주주들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시가총액과 주가가 계속해서 하락하면서다.
한미약품그룹의 추후 전망도 어둡다.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더라도 사태를 수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의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51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1.4% 감소했고, 한미사이언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7.2% 줄어든 224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임시주총이 경영권 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주식 매각으로 지분이 감소한 형제 측이 내년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면 가족 간 타협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형제 측이 이사회 구도 재편 등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