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수사가 이미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농단 사건과 다르게 계엄 사태는 사실상 실시간 생중계된 데다 국헌문란 의도 등 계엄의 위법성을 따지는 이번 수사가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영향으로 분석된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이 앞다퉈 수사 경쟁을 벌인 점도 속도전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는 지난 4일 윤 대통령 등 계엄에 관여한 핵심 인물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8일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11일 김 전 장관이 구속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 시도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발장 접수 7일 만인 지난 11일 경찰은 대통령실 압수수색에 나섰으며 검찰은 윤 대통령에게 소환조사 일정을 통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 수사는 비교적 더디게 진행됐다. 핵심 피의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 대한 고발장은 2016년 9월 29일 접수됐다. 접수 6일 만에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사건이 배당됐다. 다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몇 명을 소환했을 뿐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특별수사본부는 고발장 접수 28일 만인 10월 27일 꾸려졌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씨 주거지 등 주요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고발장 접수 27일 만에 이뤄졌다. 최씨는 45일 만에 구속됐다.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까지는 고발장 접수 이후 127일이 걸렸다.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는 고발장 접수 173일 만에 이뤄졌다.
국정농단 때보다 계엄 수사가 훨씬 빠르게 진행된 배경에는 사건 쟁점이 비교적 적다는 점이 꼽힌다.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초반에 최씨가 단순히 박 전 대통령의 업무 일부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대기업의 불법 지원 의혹뿐 아니라 최씨 딸 입시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며 수사 범위가 확대됐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초기 참고인 신분이었다가 수사 착수 한 달여 뒤 피의자로 전환됐다. 반면 비상계엄 사태는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사태 경과 등이 소상히 드러난 데다 수사 대상도 군과 경찰, 정부 관계자 등 비교적 명확한 상태다.
내란 혐의가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형사 면책특권의 예외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면책 예외에 해당하는 내란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됐기 때문에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뇌물 등 혐의로 수사를 받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와 구속 절차는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야 본격화된 측면이 있다.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국정농단 수사 때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를 둘러싸고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며 “윤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가 가능한 범죄 혐의를 받기 때문에 그때처럼 체포·구속에 제한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결론을 내리기 전 검찰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구속 등 강제수사에 착수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검찰·경찰·공수처 등 수사기관 간 주도권 경쟁이 수사 속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 부분도 있다. 수사 초반 각 수사기관은 경쟁적으로 핵심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고 주요 장소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과 검찰, 공수처가 앞다퉈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법원이 중복 청구에 따른 기각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