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애인 경사로 미설치’ 배상 판결… 소극적 행정 바뀌어야

입력 2024-12-20 01:10

장애인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국가가 당사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최초 사례이자 정부의 ‘입법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에 대한 배상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판결이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소극적 행정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모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9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정부가 장애인인 원고 2명에게 1인당 1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직접 명령했다. 대법원은 “피고(정부)의 개선 입법 의무 불이행으로 장애인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평등권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피해를 봤다”며 정부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1998년부터 적용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은 바닥면적 합계 300㎡ 이상인 편의점 등 소매점에만 경사로 등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기준에 해당하는 소매점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자 정부는 2022년 4월에야 조건을 ‘바닥면적 합계 50㎡’로 강화했다. 원고는 오랫동안 시행령을 방치함으로써 장애인 접근권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2018년 정부 상대 소송을 냈으나 1심과 2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장애인 단체가 줄곧 개정을 요구했고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규정을 방치했다며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은 향후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