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연한 조치다. 야당의 ‘탄핵’ 위협에 굴하지 않고 거부권 행사를 결단한 것이다. 한 권한대행은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설사 탄핵되더라도 잘못된 법안을 막는 게 나라 미래를 위해 더 옳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양곡법 외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다. 그런데 법안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왜 거부했는지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이 담긴 양곡법은 쌀 공급 과잉과 재정 악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농어업 관련 세 법안도 농수산물 수급 불안정을 야기하거나 과도한 정부 지원으로 타 분야와 형평성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다. 예산안 자동 부의 조항을 없앤 국회법은 예산안 처리를 더욱 늦출 수 있고, 증언감정법은 기업기밀 유출 피해가 우려된다.
하지만 거부권 행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행사자 이름만 윤석열에서 한덕수로 바뀌었을 뿐 내란 정권의 망령이 살아있다”고 비판했다. 또 “내란 부역으로 판단되는 즉시 끌어내리겠다. 선 넘지 마라”고 경고했다. 향후 ‘김건희 특검법’ 등을 추가로 거부하면 탄핵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야당도 이들 법안을 추진하려는 나름의 취지가 있겠지만 여야 간, 이해 당사자 간 견해차가 큰 만큼 숙의할 시간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엔 쟁점 법안을 놓고 여야정이 대립하며 힘과 시간을 허비할 겨를이 없다. 그런 법안은 처리를 미루고 지금은 계엄 사태에 따른 국정 혼란을 수습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환율이 치솟는 등 금융이 불안하고 내수 악화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워하는 등 지금 당장 대처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때에 또다시 입법 독주를 벌이고 누군가를 탄핵으로 끌어내리며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은 여야 할 것 없이 국난 극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큰 정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