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만 켜면 만남 주선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온다. 미혼 청년부터 중장년 돌싱(이혼자)까지,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 들떠 있는 표정이 재밌다. 58년 개띠 노총각인 개그맨 주병진(66)이 최근 늦깎이 연애에 도전하는 모습도 왠지 신선해 보인다. 남녀 간 사랑은 나이와 처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이기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만남 뒤의 이별이 어느덧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고통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이별 통보를 이유로 이성에 교제폭력을 가해 경찰에 넘겨진 사례가 1만4000건에 달했다. 5년 전 9800여건보다 40% 이상 늘어난 수치로 우리 사회가 설레는 만남 뒤의 쓰디쓴 이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교제폭력이 남녀 간의 일이라는 이유로 구속되는 가해자 비율이 2% 미만에 그쳐 2차 폭력 우려도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제3자가 이별을 대신 관리해줘야 할 정도가 된 것인데 이건 한국 사회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 중국에서 안전한 이별을 대행하는 ‘화이트 마피아’라는 사설 경호팀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퇴역 군 장교나 운동선수 출신의 팀원들이 신체적 위협으로부터 여성 고객을 보호하고,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지원까지 한다. 서비스 비용은 200만원가량으로 저렴하진 않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곧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이별은 미의 창조’의 한 구절이다. 역설적이게도 ‘님’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는 만남이 아닌 이별임을 노래하고 있다. 이별은 님의 존재를 깨닫는 계기요, 님은 이별을 속성으로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이별은 상대방에 대한 집착이 아닌 인격적인 사귐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그때야 비로소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과정이 된다. 안전 이별 대행소가 필요 없는 이유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