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다정한 동네책방

입력 2024-12-20 00:35

어디서나 만나는 작은 책방
나를 안아주는 따뜻함 가득
책 지키는 사람 온기 느껴져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지역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요새는 어디를 가든지 동네마다 특색 있는 책방이 많다. 지방도시에 가면 지역을 대표하는 큰 서점이 있다. 옛날 생각이 나면서 돌아보는 재미도 있어 책방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본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포구에 있는 ‘아독방’은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의 약자로, 약사인 주인장이 책 보려고 약국 한편에 만든 책방이다. ‘쿨디가’는 하우스 클래식 콘서트를 여는 작은 독립서점이고, 팝업 책방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작가들을 소개한다.

나와 책방의 인연은 작은 동네서점에서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대전에서 서울로 유학 온 나는 고교 시절을 쌍문동 이모네 식구들이랑 함께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식구가 하나 늘어난 셈인데, 성격 좋고 너그러운 이모네는 나를 가족처럼 혹은 가족 이상으로 허물없이 대했다. 통학버스를 타고 대로변 정류장에 내려 언덕 위에 있는 집으로 올라오는 큰길에는 작은 동네서점이 있었다. 한 평 되는 작은 공간에 책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정말 작은 서점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만화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던 나는 그 서점에 시시때때로 들러 월간 만화잡지를 샀다. 큰 서점이 아닌데도 서서 책을 읽거나 둘러보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작은 공간인데도 주인아저씨는 책을 읽는 것도 너그러이 용서해줬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젊은 청년이었던 책방 사장님과 친해졌다. 사장님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공대를 나왔는데, 아버지가 하시던 한 평짜리 서점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자세한 대화는 기억이 안 나지만, 또 몰래 책을 읽느냐고 사장님이 부지깽이를 들고 그만 집에 가라고 달려나오면서 장난삼아 위협했던 기억도 있다. 고교 3학년이 돼 아빠가 서울로 올라와서 나는 이사를 했고, 사장님도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앞 큰 서점 자리를 봐서 확장 이전한다고 안녕을 고했다. 그때 파릇파릇했던 젊은 사장님도 지금은 할아버지가 돼 가겠지. 문득 생각나는 동네 책방의 소중한 추억이다.

최근 경북 경주에서 북카페를 낸 언니가 책방에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두 번째 책을 냈다. 50세가 돼 자유롭게 살겠다고 연고도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도시라는 경주에 정착해 ‘지금 니 생각중이야’라는 북카페를 차리고 책방지기의 길을 택한 언니다. 가끔 헌책도 팔고 음료도 팔지만, 손이 느려 손님이 많이 오면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해한다. 첫 번째 책을 냈을 때의 출간기념회 생각이 난다. 경주에 정착하면서 당장 책 모임부터 나갔던 그녀의 책동무들이 준비한 자리였다. 출간기념회는 동네잔치였다. 언니가 밤새 준비한 음식과 김치, 떡과 과자가 넘쳤다. 한 친구는 배운 지 한 달 됐다는 우쿨렐레를 연주했고, 다른 친구는 관객들 앞에서 벨리댄스를 선보였다. 글동무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나를 안아주는 따뜻한 책방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주인장의 바람에 맞게 참으로 따스하고 모두를 안아주는 파티였다. 카페가 방문객을 안아주는 책방이 되기를 소망했는데, 방문객들이 자신을 안아줬다고 고백하는 그녀. “와줘서 고마워요. 북카페에 가면 책을 읽어줘서 고마워요”라는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동네책방, 동네카페만의 정겨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이 만든다. 우리 동네 ‘지구불시착’이라는 책방 사장님은 동네 축제가 있으면 꼭 부스를 꾸리고 참석한다. 직접 그린 삽화로 책도 내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책을 출판하기도 한다. 동네책방을 중심으로 글쓰기 모임, 독립서점에서만 파는 다양한 주제의 책도 만날 수 있다. 동네책방에는 책도 있지만, 책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책방들은 하나하나가 군불을 때고 나눠주는 작은 온돌들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멀리 경주에서 열심히 사람들을 돌보며 군불을 때고 있을 언니에게, 또 전국의 용기 있는 작은 서점 주인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정다정 메타 인스타그램 홍보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