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똥꼬발랄’한 참여세대

입력 2024-12-20 00:36

지난 토요일 여의도 집회에 참여했다. 8년 전 광화문에는 꽤나 여러 번 참여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더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한 번의 탄핵 후폭풍에 지쳐서 그랬는가, 가는 길이 망설여졌다. 그런데 마지막일 것도 같고, 마침 영등포에 있는 교회에서 점심에 이은 기도회도 있어서 혹여 마음이 동할까 싶어서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고 길을 나섰다.

교회에 가자마자 30대의 한 자매가 “목사님, 여의도 갈 거죠?” 하고 묻는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저는 갈 건데 같이 가요” 한다. 이 장면이 상당히 어색하기도 해서 망설이며 제대로 된 답을 못했다. 일단 기도회 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기도회 끝나고 교제시간을 나누는데 이 자매가 재차 묻는다. 그런데 저쪽 테이블의 한 자매가 자기도 가려고 모든 준비를 하고 왔단다. 목사님 가면 셋이 같이 가자고 한다. 그래서 수락을 했고 어색한 세 명의 즐거운 동행이 시작됐다. 교인들과 집회를 나선다는 것이 처음이고, 그것도 30대 자매 둘과의 동행이 신기하기도 해서다.

집회는 뉴스에서 보던 것과 같이 젊은이들의 축제였다. 응원봉이 형형색색 빛났고, 노래는 최근 유행하는 것들이었다. 가장 압도적인 것은 로제의 ‘아파트’였고 거북이의 ‘비행기’도 신이 났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앞쪽에 여학생 몇 명이 모여서 몸을 흔들며 노래에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경망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똥꼬발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이 비장한 자리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응원봉을 손에 쥐고 몸을 흔들고 있는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이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을 것 같다.

8년 전 광화문에서는 주로 40대와 50대 아저씨들이 주류였다. 소위 86세대들이었다. 구호를 외칠 때면 묵직한 아저씨들의 함성이 웅장함을 만들었다. 그런데 2024년 여의도에서 이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이 신기한 자리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아저씨들이었다.

여의도 집회는 젊은 여성들이 주류를 이뤘다. 구호를 외칠 때면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압도했다. 젊은 남성들은 쉬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집회는 아주 발랄해졌다. 그런데 이들을 보면서 한켠에 안타까움이 생겼다. 왜 젊은 여성들이 이 자리로 나왔을까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이들이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분노 때문이다. 2년여 전 대통령 선거에서 현 여당은 젊은이들의 표를 얻을 방법이 없었고, 마지막 수단으로 여성들을 적으로 돌리고 남성들의 분노를 자극하며 20대 남성의 표를 얻어갔다. 그 결과 오늘날 아이돌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참여세대’라고 한다. 개인주의로 뿔뿔이 흩어진 것 같은 MZ세대를 가리켜 이렇게 부르는 것은 신기하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내세우면 기꺼이 광장으로 나와서 역사를 바꿔 간다. 여기에는 조직도 없고, 학연이나 지연 또는 혈연의 근거도 없다. 이들 삶에 익숙한 SNS를 통해 공감하며 움직인다. 그렇게 사회를 바꾸어 갈 수 있다는 확신과 경험이 이들에게 있다.

이제 역사는 어른들 손으로 넘어갔다. 헌법재판소의 법률과정이 있을 것이고,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타산이 있을 것이다. 이 똥꼬발랄한 참여세대가 만들어낸 역사에서 비장하지만 믿을 수 없는 검은 양복의 아저씨들 시간으로 넘어간 것이다.

제발 누구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목회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