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온 개헌 주장은 ‘정국전환용 꼼수’ 아니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개헌은 쉽지 않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정권 차원에서 늘 개헌 필요성이 개진됐지만 국민투표에도 부쳐진 적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직접 제안했지만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한창이던 2016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헌법 개정 완수’를 공언했지만 그날 저녁 태블릿PC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강한 개헌 의지를 가졌던 문재인정부는 임기 초반인 2018년 3월 ‘대통령제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표했지만 결국 개헌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개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탄핵 정국에서 개헌 논의가 ‘블랙홀’처럼 탄핵을 비롯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것이라는 이유, 우려, 의심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더 좋은 정치제도를 갖기 위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정치적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 보면 어떨까. 권력구조 개편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개헌의 핵심은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이다. 권력구조 개편은 ①대통령 5년 단임제(현행유지) ②대통령 4년 중임제 ③이원집정부제 ④의원내각제 정도의 안이 이미 마련돼 있는데, 국민이 어떤 권력구조를 원하는지 국민투표로 직접 물어본다면 ‘국민의 의지’가 정치권의 ‘태업’을 막는 가장 무거운 압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현행 국민투표법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과 ‘헌법개정안’만 찬반을 묻게 돼 있다. 중앙선관위는 권력구조 개편안에 대한 국민 선호를 묻는 국민투표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노무현정부에서 개헌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도 “당시도 검토해봤지만 헌법의 취지와 어긋나 어렵다는 판단으로 시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정당의 원내대표도, 입법기관 수장인 국회의장의 정당 후보도 전 당원 투표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시대인데, 의지만 있다면 특별법을 만들어 시도해볼 만하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내년과 후년 연이어 전국단위 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있으니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이르면 2년, 늦어도 3년 안에 국민의 개헌 의사를 두 번 물어볼 기회도 있다.
차기 전국단위 선거에서 국민의 권력구조 선호를 확인하고, 그다음 전국단위 선거에서 합의된 개헌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른 개헌 타임테이블’이 마련된다면 국회도 더 이상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개헌을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전국단위 여론조사도 거론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국가기관인 선관위의 투표 시스템마저 의심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로 개헌안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이 권력구조 개편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인데, 이 기회에 함께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에 대해 다 알고 투표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만약 다 알고 투표했다면 전 국민이 오밤중 ‘비상계엄 해프닝’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