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2.1%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1.9%로 낮춰잡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하방 압력이 가중돼 재정 확장으로 경기를 부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재정을 통한 전면적 경기 부양은 필요 없다’고 했던 지난 10월 말과 달라진 것으로,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그만큼 급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에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를 열고 “올해 4분기 성장률을 0.5%로 예상했는데 0.4%나 조금 더 낮아질 것”이라며 “올해 성장률이 (기존 2.2%에서) 2.1%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낮춘 데 이어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소비 심리 악화가 성장률 전망을 낮춘 배경이다. 이 총재는 “수출은 예상대로 유지되는 것 같지만 소비 지표인 카드 사용액은 생각보다 더 하락하는 모습”이라며 “경제 심리 지수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내년 성장률과 관련해서도 “애초 1.9%로 예상했는데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0.06% 포인트가량 긴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럴 때 재정이 긴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경제 심리 개선을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총재는 “코로나 위기 때처럼 장기적 재정 건전성 고려 없이 무조건 재정을 풀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일시적으로 특정 항목을 타깃해서 지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야·정이 빠른 시일 내 합의해서 새로운 예산안을 발표하는 게 경제 심리에도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통화 당국 수장으로서 한은 총재의 재정 확장 관련 언급은 이례적이다. 이 총재는 지난 10월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경기 침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아직 전면적인 부양은 필요 없다”고 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7~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지난해 3.6%보다 큰 폭으로 낮아졌다. 기대 인플레이션도 둔화하며 목표치인 2% 부근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은은 “향후 중장기 시계에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우 저성장 저물가(1%이하)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팬데믹을 거치며 인플레이션 불평등은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은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동일 품목 내 상품을 비교한 결과 가격이 낮은 1분위 상품 상승률은 16.4% 오르는 동안 고가의 4분위 상품 상승률은 5.6%에 그친 것을 확인했다.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 물가 상승에 따른 충격을 더 많이 받았다는 의미다.
김준희 황인호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