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경제 심리 되살리기

입력 2024-12-19 00:38

돈이 문제다. 대개는 돈이 ‘없어서’ 문제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젊은이들, 다달이 밀려드는 각종 청구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장바구니를 더 작고 더 가볍게 들어도 무거운 마음으로 살림을 하게 되는 주부들, 벌어둔 돈도 벌이도 없어 노후가 까마득한 노인들, 하다못해 용돈 받는 학생들까지…. 빠듯하게 살아야 하는 수많은 소시민에게 돈은, 없어서 문제다.

‘없는’ 문제를 해결하면 많은 게 나아진다. 구겨지고 쪼그라진 것들은 꼬깃꼬깃하게나마 펼쳐지고, 비어 있던 자리는 무엇으로든 채워진다. 구색을 갖추는 게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돈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돈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는 언제고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다음부터는 다만, 미묘해진다. 정도와 수준이 문제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얼마나’와 ‘어떻게’의 국면으로 전환된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 것인지, 어떻게 벌거나 써야 만족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의 똬리를 튼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더욱 그렇다.

있고 없고의 차원에서는 돈 자체가 문제였다면, 이후에는 ‘심리’의 문제가 된다. 심리 자체는 실체가 없다. 도무지 두루뭉술해 보이는 심리라는 것이 돈의 흐름을 좌우한다니 아무래도 난센스 같다. 그러나 경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도, 자본의 흐름을 살피는 금융업자들도,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모두 다 심리를 거론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체감되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돈의 흐름에는 거대한 집단 심리가 문제로 작동하고 있다. 소비심리, 투자심리, 매수심리가 모두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금리·고물가·고환율 기조가 지속하면서 생겨난 각종 경제심리 위축은 불경기로 연결됐다. 이미 그렇게 2년을 지나왔는데, 더 나쁜 일이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됐다. 한겨울 논에 묶어둔 짚단처럼 버석하게 말라 있던 경제심리에 벼락을 내리꽂고는 태워버렸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던 그는 경제심리를 위축시키는 데에만 혁혁하게 기여했다.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되지 않았다면 경제심리만 얼어붙게 만드는 게 아니라 경제 자체를 일거에 몰락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악은 피했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은 들지 않는다. 산업계에서는 자금경색 우려가 나오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1400원대 중반의 환율이 뉴노멀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라는 외부의 리스크도 만만찮다. ‘미국 우선주의’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벌써부터 위협이 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외교·통상 공백을 메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한 것도 문제다. 불확실성은 불안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불안은 쉽게 전염된다. 집단적인 경제심리 위축이 자명해 보인다. 불안하면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기업과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뿐일 테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누구나 새해에는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바란다. 불경기로부터 빠져나오는 정치를 하는 게 민심을 잡는 일이다. 정치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정쟁 대신 경제심리 회복에 힘을 쓰기 바라는 게 순진한 기대감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새해에는 기대감부터 회복하고 싶다.

문수정 산업2부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