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를 쓴 노벨상 작가… 그의 내면을 엿보다

입력 2024-12-20 03:31
튀르키예 이스탄불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오르한 파묵. 그는 14년 동안 ‘몰스킨 공책’에 매일 일기와 그림을 쓰고 그렸다. 민음사 제공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어려서부터 화가가 꿈이었다. 터키 이스탄불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했다가 22세에 자기 안의 화가를 죽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건축가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순수 박물관’을 쓰고, 같은 이름의 박물관을 세우면서 달랬다. 못 이룬 화가의 꿈은 오스만 제국 화가들의 열정과 고뇌를 담은 ‘내 이름은 빨강’에 녹아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2년 뒤인 2008년, 그는 충동적으로 상점에 들어가 연필과 붓을 사고 작은 화첩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안의 화가는 죽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즐겨 사용했다는 ‘몰스킨 공책’에 매일 일기와 그림을 쓰고 그렸다. 파묵은 “이곳은 나에게 속한 세상이다. 비밀스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가장 자유로운 느낌으로 글과 그림을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모인 2009~2022년까지 14년간의 단상은 수천 페이지에 달했고 한 권으로 요약한 것이 ‘먼 산의 기억’이다. 책에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겪은 일, 가족에 관한 일화, 글 쓰는 과정, 고국 튀르키예와의 복잡한 관계 등을 담은 짧은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자택 발코니에서 바라다보이는 ‘먼 산’, 아담한 작업실 풍경, 종일 소설을 쓰고 나서 거실 소파에서 잠든 작가 자신, 꿈에서 본 풍경 등 직접 그린 다양한 그림이 함께 한다.

모든 일기가 그렇듯 책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를 회상한다. “나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고, 매우 부끄러웠다.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지 않았으면 해서 공책에 그렸다. 심지어 약간의 죄책감마저 느꼈다. 이것은 내가 은밀히 단어들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행복에 대해 “가장 큰 행복은 소설 속에서 길을 잃는 것. 항상 등장인물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글쓰기의 어려움도 토로한다. “메블루트-페르하트 식당에서’(소설 ‘페스트의 밤’ 일부)를 세 번째로 수정하며 다시 쓰고 있다. 오후가 되면 힘이 소진된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자신감 결여와 불신이 죽음처럼 나를 압도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주위를 돌아, 오르한, 침착해, 기죽지 마. 그리고 바다에서 한동안 수영했다. 바다에서 등을 대고 뒤로 헤엄쳐 갈 때 소설의 조각들이 내 상상 속에서 합치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었다.”

소설 '페스트의 밤'을 완성할 때의 작업실 풍경. 오르한 파묵 제공

그린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책상에서 일하다가 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를 기록한 글이다. “그 순간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마치 내가 보는 세상의 사물 사이에 스며드는 것과 같다. 혹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나에게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기장에 그림을 그리면 세상의 시가 내 일상에 스며든다.”

작업실 소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묵의 모습. 오르한 파묵 제공

파묵은 순수 박물관을 지을 때 “박물관은 나를 무척 지치고 불행하게 만든다. 즐겁게 글을 쓸 시간을 빼앗는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2011년 가을에 남미를 여행하던 중 여자 친구 키란 데사이와 헤어졌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나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살짝 사생활을 언급하기도 한다.

파묵은 튀르키예의 권위적인 정치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오해’할 수 있는 단어를 수정하고 설명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 모든 두려움, 우려는 튀르키예에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절대적인 증거”라면서 “십 년 동안 나는 이러한 두려움, 캠페인, 비난, 굴욕을 안고 살아왔다”고 토로한다. 그는 최근 한국언론과의 공동 서면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내가 용감하다고 말하는데, 과장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물론 두려울 때가 있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많은 작가를 감옥에 넣었지만, 아마도 노벨문학상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