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심의하려다 보류했다.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고심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부권 시한(21일)이 코앞에 다가옴에 따라 국민을 믿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독소조항이 적지 않은 반시장 법안이 가져올 폐해를 방지하는 것이 경제 살리기에 중요하다. 정부가 오늘 임시국무회의를 연다고 하니 한 권한대행은 거부권 행사를 주저하지 말기 바란다.
6개 법안은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과 국회증언감정법, 국회법 개정안이다. 쌀값이 기준치보다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 담긴 농업 4법은 만성적 쌀 과잉 생산을 초래해 농업 구조개혁에 역행한다. 국회증언법은 회사 기밀도 국회에 제출토록 해 기술 유출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고, 국회 예산안 자동 부의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은 예산 심사의 난맥상을 키울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계엄 사태 전에 이들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예상한 정쟁용 카드로 내세운 측면이 강하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지금은 이런 법들을 자진 철회하는 게 답인데 민주당은 되레 기세등등하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18일 한 권한대행에게 “대행 된 걸 대통령이 된 걸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청소 대행은 청소가 본분”이라며 “권한대행의 권한은 국민이 선출한 국회 동의 내에서 행사하라”고까지 했다. 비유 자체가 모멸적일 뿐더러 대통령 권한대행이 다수당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라는 식의 사고가 대단히 부적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 고건 권한대행이 사면법 등 2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이제 와 거부권을 문제 삼는 건 모순 아닌가.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다. 내수 부진, 수출 둔화, 환율 불안으로 경제 여건은 최악이다. 국내 안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계엄 여파로 한국 패싱이 우려된다. 이런 시기에 야당이 힘만 앞세워 대통령 권한대행을 흔들 생각만 해서 되겠나. 민주당이야말로 집권당이 된 걸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한 권한대행은 국익과 민생만을 보며 권한을 행사하고 민주당은 겁박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