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희망을 보다

입력 2024-12-20 03:40
게티이미지뱅크

제목만 보면 종말론을 신봉하는 소수의 사이비 광신도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종말의 징후를 더 민감하게 생각하는, 그리고 더 과감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도 인류의 종말은 “서서히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고 있고, 온갖 전조들을 보이면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종말의 전조들은 이미 어른거리고 있다. 기후 재앙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핵전쟁, 팬데믹, 민주주의의 위기와 우파 포퓰리즘의 횡행,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불안이 퍼지고 있다. 저자는 “문명이 이미 몰락할 운명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고 묻는다. 아일랜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년여간 “미래의 그림자가 현재에 가장 짙게 드리워진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는 “끔찍한 미래를 정면으로 보면서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현재의 삶을 위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때로는 비판의 칼날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했다.

저자는 가장 먼저 미국 사우스다코타 블랙힐스를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탄의 보관과 실험을 위해 마련된 지하벙커가 있는 곳이다. ‘종말 부동산업계의 거물’ 로버트 비시노는 ‘비보스’라는 회사를 세우고, 이곳을 세상의 종말이 와도 안전하게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지하 대피소로 꾸미고 있다. 그는 지구의 자전축이 갑자기 옮겨져서 대규모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거나 목성만 한 떠돌이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으로 믿고 있다. 더 나아가 국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에 빠져 있다. 인디애나의 옥수수밭 지하에 있는 비보스 본사에는 식당과 극장, 의료 센터, 수경 재배 농장까지 갖추고 있다. 비보스는 종말 대비를 넘어 미래 전망도 제시한다. 저자는 “부유하면서 서로 같은 이념을 지닌 이들이 모여 외부인(가난한 자, 굶주린 자, 절망에 빠진 자, 대비하지 않은 자)을 철저히 차단하는 요새에서 자치적으로 살면서 문명이 아예 맨땅에서부터 새로 재구성되기를 기다린다는 개념”이라고 정리한다. 그리고 묻는다. “어떤 대재앙이 사건이 벌어진 뒤에 나 자신이 이미 겪고 있는 고통보다 남들의 고통에 더 무심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비보스 같은 업체를 수용할 수 있는 문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붕괴한 문명”이라면서 “우리 운명이 공동체적이라는 것, 우리가 홀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 모든 개념을 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저자의 발걸음은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벤처투자가인 피터 틸 같은 억만장자들이 종말 이후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도피처를 마련해 둔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다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같은 이들이 모여 화성 이주와 정착을 논의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이들은 또 다른 비시노들이다. 자기 혼자만 탈출하려고 할 뿐 공동체가 힘을 합쳐 종말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의무와 모든 얽힘을 해체한다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에게서 “국민 국가로부터, 민주주의로부터, 최종적으로는 황폐해진 지구로부터 벗어나려는” 음흉한 의도와 “유럽 백인의 식민지 정복과 착취 정신”을 읽어 낸다.

다음 여행지는 스코틀랜드의 알라데일 야생보호구역. “기후 재앙은 현실이자 불가피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자연에서 희망을 찾는 ‘검은 산 프로젝트’ 회원들의 캠핑에 참여한다. 한 참여자는 저자에게 말한다. “머지않아 모두 사라질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 뒤에 자연이 다시 출현해 회복될 것이고, 그 자연은 아름다울 거예요. 나는 내게 남은 삶을 즐기고 싶어요. 좋은 씨앗을 뿌리고 싶어요.” 저자는 그곳에서 ‘홀로 자연’을 경험하며 희망의 싹을 느끼고, “문명 붕괴에서 살아남게 해줄 것은 사람들을 돕는 것을 배우는 것, 동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뿐”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마지막 여행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애초 “세상의 종말이 어떤 모습인지 알기 위해서”라는 목적과 달리 의외의 풍경을 마주한다. 그는 “내가 보고 있는 광경에는 사실 종말을 상기시키는 것이 전혀 없었다. 핏빛으로 물든 물결이 전혀 없었다. 사후, 조용한 회복이 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최후를 암시하는 황폐한 풍경을 찾아 1년 넘게 돌아다닌 뒤 저자는 더 이상 미래에 관한 절망을 느끼지 않게 됐다고, 지속적인 불안 상태가 결코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완전한 파괴, 인류에게 의미 있는 모든 것의 소멸을 전망하고, 그럴 것이라고, 그러니 소멸이 일어나도록 놔두라”는 느낌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것은 무(無)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그전까지 모든 것은 무가 아니며, 무에 가깝지도 않다. 그전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라.”

⊙ 세·줄·평 ★ ★ ★
·미래가 두려운 것은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의 회복력과 협력을 믿어보자
·논리적이긴 보다 감성적인 책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