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2월 20일] 어린 양, 메시아의 표적

입력 2024-12-20 03:08

찬송 : ‘참 반가운 성도여’ 122장(통12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2장 12절


말씀 : 하나님은 망가진 피조 세계를 어떻게 회복하실까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깨져 절망하는 인류를 향한 그분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종교적 상식을 내려놓고 성경을 통해 그분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누가복음 2장의 성탄 기사는 그리스도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시절에 세상에 오셨다고 기록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메시아의 구원은 아우구스투스가 군사·경제적 힘으로 일궈낸 로마제국의 태평성대(Pax Romana)와 유사합니다. 역사적 교회도 종종 그런 메시아 왕국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영국의 태평성대(Pax Britannica), 미국의 태평성대(Pax Americana), 대한민국의 태평성대(Pax Koreana) 등을 꾸준히 추구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정교회 일부 지도자들은 푸틴의 불의한 야욕을 러시아의 태평성대(Pax Russiana)를 위한 거룩한 전쟁인양 미화하기도 합니다.

과거 군사독재를 미화했고 지금도 불의한 권력을 옹호하는 한국의 일부 교회 지도자와 성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샬롬은 ‘힘의 기독교’를 통해 구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천군 천사를 동원해 대적을 제압하시리라 기대하며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는 하나님의 방식인 ‘십자가의 도’를 크게 오해했고, 한때 주님의 십자가를 가로막기까지 했습니다. 중세교회의 십자군전쟁도 ‘십자가의 도’를 ‘십자군의 도’로 뒤튼 참담한 오류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신 그리스도는 역설적으로 십자가의 방식을 가르치고 구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수많은 구도자가 그 십자가의 역설에 실망하고 걸려 넘어졌습니다. ‘약함의 능력’, ‘온유하고 겸손한 왕’이라니요.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그의 양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더불어 강력한 로마제국을 건설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달력까지 바꾼(July-August) 대단한 독재자입니다. 1절에 기록된 인구조사도 독재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통제의 방도였는데 인간 존중과 반대되는 독재는 어떤 이유로든 용인될 수 없습니다. 부국강병을 일궈내기만 하면 독재도 괜찮다는 것은 ‘가이사의 왕국’을 추구하는 자들의 주장이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교회가 할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보다 힘과 맘몬의 가치를 앞세우는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왕 중 왕’이신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샬롬을 구현하셨습니다. 화려한 왕국에 거하는 강력한 군주가 아니라 초라한 마구간에 누워있는 연약한 아기가 메시아의 표적이라는 천사의 선언이 놀랍지 않습니까. 십자가는 성경이 정의하는 참된 평화를 일궈낼 하나님의 해법입니다. 겸손하신 어린 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주님을 맞으러 우리 모두 마구간으로 내려가는 성탄 절기가 되기 바랍니다.

기도 : 전능하신 주님께서 겸손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샬롬을 이루어주심을 찬양합니다. 그 십자가의 도를 깊이 품고 세상에서 겸손히 섬기며 참된 평화를 전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민영 은퇴 선교사 (전 국제위클리프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