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실패했는가?

입력 2024-12-21 00:42
혼란한 정국, 여느 때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크리스천의 기도가 필요할 때다. 사진은 성경책 위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 픽사베이

여기 한 여인이 있다. 대대로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문중에는 꽤 영향력 있는 주지 스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어느 평범한 목회자의 아들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가 기대한 만큼 신앙이 깊지 않았다. 번번이 마찰을 겪었다. 상처뿐인 결혼생활은 오히려 그녀를 하나님께 매달리게 했다. 별거에 이르며 부부 사이의 틈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어느 날, 그녀는 40대의 이른 나이에 시한부 암 선고를 받았다. 극심한 고통은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도 점점 앗아갔다. 그래도 그녀는 끝까지 하나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가 더는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예수를 찬양했고, 성경을 묵상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녀의 영혼을 천국으로 거둬가셨다.

지인의 가족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고통 속에서도 신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이란 무얼까. 그녀의 삶은 실패한 건가?’

세상 기준으로 보면, 실패일 수 있다. 끝내 병을 이겨내지 못했고, 남편 곁에서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맞았지만 온전한 관계 회복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암은 그녀의 모든 걸 빼앗아갔지만, 한 가지만은 결코 빼앗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도 찬양을 부르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앙을 갖게 된 자녀였다. 그 아이는 다짐했다. 성직자가 돼 어머니가 그토록 찾던 하나님을 알아가 보겠노라고. 그녀의 남편도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에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 ‘다리를 놓는 자’의 역할이 있었음을. 그 말을 들으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을 때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녀의 삶은 실패했는가?

성경 속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이 떠오른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라.”

그녀의 사연에서 세상에 남겨진 우리들의 몫과 과제를 생각해본다. 그녀의 자녀 마음에 심어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잘 자라나도록 함께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일이라고 답을 적어본다.

일본 영화 ‘우드잡’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뺀질이 도시 청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우연히 본 홍보 전단의 모델이 예쁘다는 이유로 산림관리 연수프로그램에 덜컥 지원한다. 긴 여정 끝에 한 시골 마을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그는 105년 전 조상이 심었던 거목이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철부지 주인공은 “우리가 가진 나무를 다 베어 팔면 부자 되겠다”며 설렘 가득한 말로 너스레를 떤다. 그러자 마을 어르신은 “그러면 우리 다음세대는 뭐 먹고 사냐”며 핀잔을 주면서 진지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다음에 나와.”

지금부터 묘목을 심고 가꿔야 다음세대에 물려줄 것이 있고 지속 가능하다는 말에서 인간의 기준과 다른 하나님이 정한 형통의 기준을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만이 축복일까.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고난조차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깨달은 크리스천의 고백을 많은 사람이 궁금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

올 한해를 돌아본다. 이루지 못한 꿈, 치유 받지 못한 상처로 점철된 한 해였을지 모른다. 특히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국가의 지도자는 피로 세운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 하지만 오랫동안 힘겹게 세운 민주주의가 실패했는가? 오히려 그에 맞서 비폭력 평화시위로 민주주의를 목숨 걸고 지켜내려 했던 시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크리스천인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건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그의 뜻을 구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올해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년을 허락하시리라는, 결국엔 선한 결과로 이끄실 것이라는 절대자가 주는 희망뿐이다. 내년에는 올 한 해 뿌려진 씨앗들이 열매 맺는 걸 보게 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