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를 숭배하고 그 능력을 찬양하는 건 인간만의 본능일까. 한여름 내내 우는 매미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파브르 곤충기’ 저자인 프랑스 과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매미의 울음엔 ‘연인을 위한 칸타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봤다.
파브르의 관찰에 따르면 매미는 암컷이 바로 옆에 있거나 짝짓기를 끝내고도 계속 큰 소리로 노래했다. 메뚜기와 귀뚜라미 등 여타 곤충도 마찬가지였다. 귀뚜라미의 경우 짝짓기를 전혀 하지 않는 독신도 생애 마지막까지 소리를 냈다. 여러 곤충을 실험하며 파브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짝짓기는 부차적 이유다. 곤충이 우는 주된 목적은 생을 즐기고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 기독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웹진 ‘좋은나무’에 신앙과 과학에 관한 글을 기고해온 저자는 파브르의 결론에서 ‘곤충도 삶과 창조주를 찬양한다’는 주장을 도출한다. 곤충이 “생의 기쁨을 노래하는 건 곧 생명을 만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통한다”는 이유다.
책은 기독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신앙과 과학 간 관계 등을 실은 저자의 전작 ‘내 신앙에 과학이 대답할 줄이야’의 후속작에 가깝다. 전작에서 파브르의 연구 자세 등을 일부 다룬 저자는 이번엔 책 전체를 할애해 파브르의 시각으로 곤충 생태계를 조망한다. 여기에 기존에 잘못 알려진 곤충에 관한 편견을 바로잡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곤충이 생태계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도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파브르가 마주한 곤충의 세계에는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뿔풍뎅이는 새끼의 안전을 위해 4개월여간 단식하며 알 곁을 지킨다. 곤충 세계에선 흔치 않은 모성애적 행동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도 보인다. 선명한 원색으로 ‘아름다운 벌레’란 별명이 붙은 버들박각시나방 애벌레는 소변을 활용해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한다. 유신론자로 가톨릭 신자였던 파브르는 “미물의 세계에 드러난 이런 놀라운 모습은 창조자 하나님 없인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온갖 강도질이 만연한 잔혹한 모습도 여럿 발견했다. 금색딱정벌레나 사마귀, 전갈 등 육식성 곤충은 먹이가 부족하지 않은데도 동족을 잡아먹는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 속 베짱이처럼 놀고먹는 곤충은 없으며 기생 곤충조차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일한다는 것도 밝혀낸다.
파브르는 곤충의 끔찍하고도 고달픈 생애를 해석하면서 성서적 관점을 제시했다. 곤충의 이런 습성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창 4:13~14) 저자도 같은 접근을 시도해 곤충 생태계 속 잔혹성의 근원을 부연한다. “적어도 인간 타락 이후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건 분명하다. 인간과 자연계 사이에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롬 8:19~22)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과 이를 비판한 파브르가 맺은 우호적 인연을 소개하면서는 ‘생각이 달라도 사람은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자고 강조한다. 40년 가까이 곤충을 연구한 파브르는 자신의 관찰 결과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진화론이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부적절하다고 보고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진화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생각은 그와 달랐지만 파브르의 과학적 접근법을 신뢰한 다윈은 그의 관찰 결과를 ‘종의 기원’에 인용했다.
저자는 이론은 비판하되 서로를 존중하는 이들의 태도가 “현재 한국 기독교에 꼭 필요한 자세”라고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창조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과학자의 발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아울러 “과학 이론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도 힘줘 말한다.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유신진화론이든 그 어떤 이론도 하나님이 만든 생명을 다 설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모두에게 필요한 조언도 담겼다. “과학 이론을 종교처럼 높이 대할 필요도, 반대로 무시할 필요도 없다.” 양자가 이런 태도로 서로를 대한다면 신앙으로 과학을 재단하고, 과학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지난 세기의 과오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