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고 어이없는 열흘 남짓이었다. 설마 농담이겠지, 딥페이크겠지 싶은 순간이 지나고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경내로 진입하는 모습이 TV와 모바일로 생중계되자 계엄은 순식간에 공포로 다가왔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발 빠른 시민과 보좌관들이 국회 앞에서 계엄군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동안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빠르게 가결돼 위기를 넘겼지만 반란의 주역들은 여전히 국가를 비상사태로 몰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두 시간 반의 악몽이었다.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는 지도자가 벌인 이 사태를 한밤중 소동이라 치부할 수 없는 건 그로 인해 깨져버린 일상은 물론 경제 불안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토요일 오전 여의도역으로 나갔다. 주최 측 100만명, 경찰 추산 10만명의 시민이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쳤지만 여당의 표결 불참으로 무산됐다. 우리는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면서 일주일 후를 약속했다.
수요일 집들이에 초대돼 보령에 내려왔다가 다음 날 아침엔 봉사활동 모임 송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송년회 다음 날 여의도에 가기 위함은 물론이었다. 동반석을 구하지 못해 각각 떨어진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에게 아내가 자리를 좀 바꿔 달라고 했다. 옆 사람 문제임을 직감했다.
아내가 앉았던 자리 옆에는 나이 든 남성 한 분이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동영상 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스마트폰 음악 소리가 너무 크네요.” 그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스마트폰 음악을 줄였다. 의외로 순순히 말을 듣는다 싶었지만 배경 음악과 유튜버의 목소리는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로 희미하게 들렸다. 문제는 카카오 메신저 창의 알림음이었다. ‘카톡! 카톡!’ 하는 소리가 기차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선생님. 근데 카톡 소리가 너무 크네요.” 내가 이렇게 또 말하자 그가 나를 째려보며 반말로 말했다.
“이건 안 줄여져.”
“왜 안 줄여져요?”
“나는 몰라.”
“제가 줄여 드릴게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안드로이드폰이었다. 아이폰만 써 온 나는 이 기종의 메인 사운드 볼륨을 줄일 줄 모른다. 통로 반대편에 앉은 중년 여성에게 폰을 건네며 부탁하려 하자 노인이 화를 내며 폰을 빼앗았다.
“이리 줘. 남의 걸 가져가고. 건방지게.” 건방지다는 말에 나도 화가 났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그러죠.”
“뭐가 피해를 주는 거야? 카톡 소리가 나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기계가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니까.” 노인은 기세등등했다. 자신은 참전용사고 나이도 80세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80세 먹은 참전용사는 공중도덕을 안 지켜도 된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은 다 줄여서 사용하잖아요.” 내가 핏대를 올리자 아내가 와서 나를 말렸다.
“그만해, 여보.” 그러나 여기서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대신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기로 했다.
“무슨 소리야. 할 얘긴 해야지.”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며 계속 노인을 추궁하자 통로 건너 좌석의 중년 여성이 얼굴을 찡그린 채 웃으며 내게 눈길을 보냈다. 착잡한 표정이었다. 노인이 풀 죽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런 대접은 처음이야. 나한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그동안 아무도 이런 얘길 안 했으니까 그런 거죠.” 아내에게 한마디 듣고 연이어 내게도 힐난을 들었으니 운 없는 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해야지. ‘나이로 상대를 누르고 싶으면 나잇값을 하셔야죠. 그리고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이에요?’라는 말들이 계속 튀어나올까봐 나는 입을 막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노인도 선거 땐 한 표를 행사한다. 사회적인 합의나 상식을 인지하지 못하는 노인의 투표권과 미성년자, 청소년의 투표권 중 어떤 게 더 위험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위쿠데타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통신 발달로 저지됐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느꼈듯 우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파괴된 일상을 되찾으면서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도 갖자. 그게 잘 사는 길이다. 돈이나 지위가 줄 수 없는 삶의 높은 가치는 타인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