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독 도서 판매도가 낮은 편인데 혹시 향상 방안이 있다면 제안 부탁드립니다.”
여느 때처럼 메일함에 쌓인 각종 단체의 보도자료를 살피다 눈에 띄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한 기독 출판사가 보내온 신간 보도자료 메일 속 문구였다. 대개 출판사 보도자료 메일엔 자사 신간의 특장점과 저자 이력, 출간일과 주요 독자층 등이 수록돼 있다. 추천사 등 책의 상세 내용과 표지는 파일로 첨부된다. 한데 이 출판사는 첨부 문서에 신간 홍보의 모든 운명을 맡겼다. 그러고선 메일 본문에 위의 문장을 덤덤한 필치로 적은 것이다.
‘기독 출판계의 어려움이야 한두 해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만 치부하기엔 문장이 자못 비장해 해당 출판사 홍보담당자에게 즉각 연락했다. 그간 유익한 책을 내온 중견 출판사에 무슨 변고라도 있는지 염려하는 마음이 컸다. 홍보담당자는 “문장 그대로다. 판매가 저조한데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 싶어 적었다”고 답했다.
당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소식이 발표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한강 열풍’ ‘K문학의 힘’ 등의 문구가 연일 기사를 장식했다. 국민적 경사로 출판 시장에 훈풍이 분다는 보도도 여럿이었다. 기독 출판계가 입은 수혜는 없는지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 이쪽은 조용한 것 같다”고 했다. 이즈음 신간을 낸 1인 출판사 대표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서점가와 인쇄소가 바빠진 건 참 좋다”면서도 “다만 기독 출판계에 미친 영향을 체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올 초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2013년 이래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독서율은 43.0%다. 전자책을 포함해 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6명이라는 얘기다. 1994년 성인 독서율(88.8%)과 비교하면 절반가량 하락한 수치다.
이런 추세를 최근 뒤집은 건 1020세대를 주축으로 일어난 ‘텍스트 힙(text hip)’ 열풍이다. 텍스트 힙은 글을 뜻하는 영단어 텍스트에 최신 유행에 밝다는 의미의 힙이 합쳐진 신조어로 ‘글 읽는 행위 자체가 멋지다’는 의미가 담겼다. 15만명이 다녀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축도 이들이었다. 여기에 ‘한강 특수’까지 겹치면서 텍스트 힙은 이제 명실상부한 시대적 조류가 됐다.
이 흐름은 왜 기독 출판계를 비껴간 듯 보일까. 읽는 게 유행이라는데 왜 교회에선 열풍은 고사하고 독서 미풍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의 저자 래리 허타도 에든버러대 명예교수가 말했듯 교회는 초창기부터 “체질적으로 텍스트를 중시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던가. 이 분야를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뾰족한 답을 내놓기 어려웠다. 통화는 기독교계에서 텍스트를 다루는 서로의 입장을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남일같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해당 분야에서 역할을 고민하는 계기도 됐다.
이 개인적 고민 해결의 실마리는 방송인 조혜련의 신간 기자간담회에서 찾았다. ‘조혜련의 잘 보이는 성경이야기’를 최근 출간한 그는 자신을 ‘성경 바람잡이’로 자처한다. 바람잡이의 사전적 의미는 ‘야바위꾼이나 치기배 따위와 짜고 옆에서 바람을 넣거나 남의 얼을 빼는 구실을 하는 사람’이다. 부정적 표현임에도 이 단어를 쓰는 건 강점을 살려 성경을 쉽고 널리 알리려는 자신의 소명을 겸손하고도 친근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솜씨는 쥐뿔도 없지만 매주 기독 서적을 소개하는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바람잡이라도 좋다, 내년엔 기독 출판계에도 훈풍이 불어오기를.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