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대선 시계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지자 여야가 공히 재판 시간 끌기 모드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먼저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급심 선고가 먼저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 파면이 결정될 경우 조기 대선 시점 및 대권 주자 명단을 가르는 사안이 될 수 있다. ‘사법의 시계’에 여야의 정치적 운명이 달려 있는 형국이다.
여야는 1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두고 격돌했다. 국민의힘은 현재의 헌법재판관 ‘6인 체제’ 유지에 공력을 집중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6명 중 단 한 명이라도 기각·각하 의견을 내면 윤 대통령 탄핵이 무산되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에 맞서 야당은 ‘9인 체제’를 신속히 구축해 탄핵 인용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려고 부심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에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지만 대통령 직무정지 시에는 임명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직무정지 시 권한대행이 임명을 못한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오는 23~24일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고 27일 본회의를 열어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불참 의사를 밝혔다.
여야는 입장이 엉키면서 주장도 뒤바꿨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 의견”이라며 공세를 폈었다. 반면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던 권성동 권한대행은 대법원 몫이었던 이정미 헌법재판관 후임 임명에 대해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고 했다. 헌법학계 다수설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이 아닌 국회·대법원 몫 헌법재판관은 현상유지 차원에서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는 이 대표의 ‘재판 지연’ 문제를 놓고도 첨예하게 대치 중이다. 이 대표는 앞선 공직선거법 위반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이 대표에게 지난 9, 11일 각각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보냈으나 ‘폐문부재’ 등 이유로 송달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항소심 사건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은 이날 이 대표에게 3번째 소송기록접수통지서와 함께 국선변호인 선정을 위한 고지를 발송했다.
국민의힘은 “고의적인 재판 지연”이라며 공세를 폈고, 선거법상 내년 2월 15일까지 2심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탄원서도 법원에 냈다. 민주당 관계자는 “변호인 선정이 다소 지연됐을 뿐 재판 지연 전략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 측은 이날 “윤 대통령이 (헌재 변론이 시작되면) 법정에서 당당하게 소신껏 입장을 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최승욱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