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미래戰 1순위 무기… ‘국대’라는 마음으로 연구 매진”

입력 2024-12-19 04:22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가 지난 11일 경기도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현구기자

연구실 밖으로 눈을 돌려 사업에 뛰어드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창업에 나선 교수는 약 13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반도체, 로봇 등 딥테크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학 계열에서의 연구가 사업·수익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딥테크에 대한 벤처캐피털(VC) 투자 규모가 확대된 것이 주된 배경이다. 학내에서도 교수가 이끄는 연구실의 창업을 격려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학사부터 석·박사까지 취업 걱정 없이 학업을 이어가면서 스타트업의 창업자로 참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경기도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만난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는 연구실 학생 약 40여명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기업 ‘에이로봇’을 운영하고 있다. 한 교수는 에이로봇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 자사 로봇 앨리스의 핵심 기술 전반을 관리·감독하지만, 실질적으로 에이로봇을 이끄는 것은 로봇 연구에 남다른 사명감이 있는 학생들이다. 한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국가 패권, 주권과 밀접한 기술”이라며 “학생들은 본인이 국가대표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와 학생들이 막중한 사명감을 느끼는 이유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국가의 핵심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가장 밀접한 분야는 국방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발발한 모든 전쟁에서는 드론이 빠지지 않고 있다. 드론과 로봇은 모터와 원격조종장치 등 들어가는 부품이 비슷하고 통신에 필요한 정보도 일치한다. 드론은 날아다니고 로봇은 걸어 다닌다는 움직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교수는 “인류는 이때까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쓰지 않은 적이 없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래 전쟁에 투입될 1순위 무기”라면서 “로봇 전쟁 시대에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로봇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1960년대 산업용 로봇이 제조업 현장에 도입되기 시작된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량생산을 위한 단순 반복 작업만 하던 로봇은 2000년대 들어 지능형 서비스까지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가정용 청소 로봇, 반려 로봇, 교육·의료 보조 로봇이 등장하면서 공장에만 머물던 로봇은 사무실과 가정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로봇들은 인간의 신체를 모방하지는 않았고, 창의적인 작업을 처리하거나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 지난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회사인 피겨AI가 오픈AI와 협업해 만든 ‘피겨01’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사람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한 피겨01은 “테이블 위에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면 “사과와 접시가 보인다”고 말하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사과를 집어 건넸다.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피겨01을 비롯해 달걀을 깨지지 않게 움켜쥐는 테슬라의 옵티머스까지 지난해 여러 빅테크 기업은 앞다퉈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였고, 관련 산업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로봇 기술 자체보다는 산업의 무한한 성장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골드먼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35년 380억 달러(약 54조6022억원)에 달하며, 로봇 출하량은 140만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상용화 시점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한 교수는 당장 내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업 현장에 투입되고, 산업 현장에서 실력을 쌓은 로봇이 10년 뒤 가정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이때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스마트폰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한 교수는 “가정은 로봇 관점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곳으로 머지않아 로봇의 지능은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수준까지 진화할 것”이라며 “범용인공지능(AGI) 등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할수록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은 날개를 달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국가적 지원이 필수다. 중국 정부는 각종 우회 정책으로 설비 지원, 인건비 보전,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산업을 키우고 있다. 지원 정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단기간에 엄청난 기술 발전이 이뤄졌다. 한 교수는 “중국이 첨단 산업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겸손한 자세로 배울 것은 배우고 뒤처진 부분은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칫 산업 육성의 시기를 놓치면 일본과 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혼다사는 지난 2000년 세계 최초의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를 개발했다. 각국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면 아시모부터 찾았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아시모와 축구 경기를 하던 모습은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이렇게 로봇 산업을 선도하던 일본이지만 현재 일본 내 연구 현장에서는 연구자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 연구의 맥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를 기점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한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미래 세대의 먹거리가 달린 만큼 이 분야가 정치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한마음 한뜻으로 산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해당 분야가 새로운 산업을 열고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다지라는 점을 기성세대가 자각하고, 미래 인류를 위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