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우손갤러리가 서울에 진출했다. 서울 성북구에 전시장을 마련하고 개관전으로 프랑스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63)의 개인전 ‘삶은 계속된다’를 지난 12일 시작했다. 대구 기반 갤러리의 서울 진출은 2013년 서촌에 지점을 낸 리안갤러리, 2021년 삼청동에 문을 신라갤러리에 이어 세 번째다. 이로써 대구의 메이저 화랑 3인방이 모두 서울 시대를 열게 됐다.
우손갤러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개관전 주인공인 이베르는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프랑스관 작가로 참여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당시 36세,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다. 한국과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와 2014년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베르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역사, 상업 등 다양한 분야를 작품에 적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TV모니터 작업으로 새로운 TV 개념을 ‘발명’했던 그는 대구와 서울 두 곳에서 동시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과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그의 회화는 유화 물감을 이용해 마치 수채화처럼 가볍게 채색하면서 드로잉의 흔적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물감이 수직으로 비처럼 캔버스에 흘러내리기도 하는데, 이런 수채화적인 느낌은 생명체의 순환을 담은 작품 주제와 잘 어울린다.
소주제로 ‘에너지’를 내세운 서울 전시에 나온 ‘모든 삶’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보자. 사람이 대지에 누워 있는데 그 몸이 자연으로 돌아가 식물이 된 듯 손가락에서, 머리카락에서 뿌리가 자란다. 발과 정강이에서도 뿌리가 자라고 버섯과 감자 등이 자란다. ‘우리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생태계의 소중함과 함께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 모두가 지구의 주인공임을 상기시킨다. 전시에서는 인체에서 식물이 자라는 설치미술도 볼 수 있다.
작업 전에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그림에 여러 단어를 적어 넣는 등 직관적이고 설명적이라는 점도 작업 특징 중 하나다. 신작을 대거 선보이며 이번에는 한글을 써넣기도 했다.
2012년 대구 봉산동에 우손갤러리를 연 김은아 대표는 대구의 간판 컬렉터로 이우환의 ‘바람’ 시리즈 등 평생 모은 작품 450여점을 2015년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유성건설 김인한 회장의 딸이다. 당시 개관전으로 대표적인 영국 조각가 토니 크랙 개인전을 열러 화제를 모았으며 데니스 오펜하임 등 현대미술 거장을 지속적으로 소개했다. 서울 전시장에서는 내년 이유진, 이헌정, 최병소, 일본 작가 나카무라 가즈미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내년 2월 8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