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1세대 실험미술 대가 이건용 작가의 후원을 받아 제정한 제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 수상자로 제주 출신 이진원(24)씨가 선정된 뒤 지역 언론은 앞다퉈 수상 사실을 보도하며 축하했다. 어머니 강선옥씨와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날아온 이씨를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했다.
수상작은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이백조 선생님’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씨는 초중고 모두 일반 학교를 나왔는데, 처음에는 비장애인 또래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다. 중학교부터 특수반이 있어 적응하는데 숨통이 트였다. 그때 만난 특수반 교사가 이백조 선생님이다. 그림 그리는 재미를 알려준 미술학원의 이은주·채명섭 선생님, 이들의 지인인 김예빈·강지안씨도 초상화의 소재가 됐다. 작품 제목에는 한결같이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가 수식어처럼 들어간다.
“진원이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 불러주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진원이가 그리는 대상은 대부분 자기에게 친절하거나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초등학교 때 또래들은 그와 잘 놀아주지 않았다. 친구가 없어 동물이 유일한 친구였다. 동물 영화를 보는 게 취미였다. 제주에 살면서도 용인 에버랜드 연간 회원권을 끊어 비행기를 타고 동물을 보러갔다. 호랑이, 사자가 나올 때까지 땡볕 아래서도 몇 시간이고 기다리던 그는 어느 때부턴가 이들 동물을 종이에 목탄으로 그렸다.
그러다 중학교 특수학교 교사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마침내 그리는 대상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을 캔버스에 담기도 했다. 이씨가 그린 초상화에는 대상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 가득 담겼다. 배경은 과감하게 원색을 써서 단색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 인물 자체의 묘사에 집중하는데 원색의 색면이 만들어내는 색의 조합에서 기쁨이 묻어난다. 이백조 선생님 초상화에서는 입술과 눈동자, 티셔츠의 색이 분홍색으로 동일해 안정적인 리듬감도 느껴진다. 강지안 선생님 초상화에서는 눈썹의 파란색과 눈동자의 주홍색, 입술의 빨간색이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배경을 안 그리려 해요. 사람만 그리려고 합니다. 나무도 좀 그려보라 해도 들은 척도 안 해요. 지금은 오로지 사람을 만나는 거,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한테 불친절한 사람, ‘츤데레’ 같은 사람은 이해를 못합니다. 액션을 했는데 리액션이 없으면 그 사람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이씨는 대상을 그릴 때는 눈을 주로 본다. 그래서 그림 속에 눈이 똑같은 사람이 없다. 눈 색깔이 다 다르다.
이씨가 그리는 초상화 대상에는 이모, 고모, 고모부, 큰아빠 등 친척도 등장한다. 희한하게 엄마, 아빠, 누나 등 가족은 없다. 언제나 가족은 내 편이어서 일 것이다. "한번은 엄마와 누나를 그려달라고 졸랐더니 정말 졸작이 나왔더라고요. 색도 칙칙하고. 하하.”
그림 입문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손동작을 많이 하면 뇌 활동도 개선이 된다고 해서 미술을 배우게 한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미술치료로 시작했다가 전문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게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설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미술학원 선생님 소개로 부천의 신경다양성예술단체 아트림을 알게 돼 함께 전시에도 참여했다.
고교 졸업 후 현재는 장애인을 채용하는 사단법인 일배움터에서 카페팀에 배정돼 바리스타로 일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일배움터는 직업재활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일상생활과 직업적응을 돕는 장애인복지시설이다. 이곳에서 인턴생활 1년을 거쳐 2023년부터 정식 직원으로 채용이 돼 도청지점에서 일한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