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지난해 미국 정치의 오늘을 진단한 매우 중요한 책 한 권을 펴냈다. ‘Tyranny of the Minority’라는 책인데, 우리 말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이다. 부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다.
두 교수는 2021년 미 의회의사당 난입 사건이 미국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소수인 지배 엘리트가 대다수 국민을 언론 조작과 왜곡된 정보유통을 통해 자신들과 이념적 경제적 성향이 다른 이를 적대시하다 못해 악마화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사회는 더 이상 합리적 대화와 소통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두 저명한 교수는 왜곡된 정보유통의 핵심에 인터넷에 흐르는 삼류 수준의 뉴스와 유튜브 알고리즘이 있다고 본다. 이 흐름이 개인의 이념적 문화적 확신을 편향된 확신으로 정착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만들고, 심지어 상대방을 적군 내지 악마처럼 여기기까지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소위 합리적 중간지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국 민주주의적 대화와 소통도 불가능해지고, 양극단만이 성행하는 문화를 양산해 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여러 차례 같은 이유로 전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 바 있다.
이번에 대통령의 돌발적 계엄령 선포를 놓고 온 국민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분명 너무 과격하고 비현실적 언어로 재단돼 있었지만, 그 속에 흐르는 정서는 누구도 신속하게 읽어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긴박한 계엄의 와중에 수백명 병력이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압수하려고 투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그동안 지속해서 지난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는 부정선거라 주장해 왔다. 심지어 일부 극우세력은 대통령이 빨리 계엄을 선포하고 중앙선관위의 서버를 확보해 부정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는데, 그것이 실제 계엄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무엇을 말할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 극단적 유튜브를 믿고 그대로 행동했다는 뜻이 아닐까. 이렇게 볼 때, 왜 계엄선포에서 그리도 과격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현실 인식이 나오게 됐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대통령이 확증편향의 방에 갇혔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만큼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무섭다. 원하는 성향의 유튜브만을 계속 보게 되면서 한 사람 안에 세뇌가 일어나, 왜곡된 확신이 점점 진실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꼭 두 가지를 권하고 싶다. 첫째, 신문은 특정신문만 보지 말고, 보수지에서 중도지 진보지 적어도 세 가지 신문은 읽도록 하여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둘째, 모두는 아니지만 유튜브의 진실성은 절반의 진실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면서 봐야 한다.
목회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 예수님은 보수셨을까 진보셨을까. 예수님 안에는 보수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가 공존한다. 끊임없이 세상 나라를 엎고 하나님 나라가 오는 세상을 꿈꾸셨다는 면에서는 진보이고, 정직 진실 사랑 자비를 추구하셨다는 면에서는 보수의 품격을 갖고 계셨다. 예수 공동체 안에는 베드로나 마태 같은 보수와 요한이나 가룟 유다 같은 진보가 공존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다.(수 1:7) 성경 안에 이미 보수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진보라고. 글쎄다.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서로 치열하게 경합하고, 대화와 토론과 건강한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가는 정치는 기독교가 세상에 준 예수의 정치원리가 현실화된 것이라 믿는다. 공산주의 같은 극단적 사상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오늘날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좋은 정치형태요, 기독교가 적극 옹호해야 할 정치원리이다. 이것을 유튜브 알고리즘과 왜곡된 정보 흐름이 붕괴시키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왜곡된 유튜브 알고리즘을 경계하자.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