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현자가 돼 읽어보니 취임 때 이미 암시가 있었나 싶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순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대통령이 지금 설명하는 비상계엄의 연유는 취임사 두 구절의 합으로도 보인다.
대통령은 과학과 진실이 무력해졌다고 여긴 게 분명하다. 취임 때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려면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 데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극단적 판단도 보고 듣고픈 사실로만 확신한 결과는 아닌지 의문이다. 애초 과학이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오류로 완성되는 과정이다. 한때는 천동설이 진실이었고 지나고 보면 데카르트도 뉴턴도 틀린 과학이었다. 그래서 과학철학자들이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지적 겸허를 과학의 동력이라 말한다.
대통령의 국정은 늘 정답이 따로 있고, 공감보다 신념에 발디딘 것이 많았다. “틀릴 수 있다”보다 “틀림없다”의 자세가 인사에서, 의대에서, 그리고 “비상계엄은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는 단언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미워하던 카르텔처럼 과학과 진실을 독점한 것은 아닐까. 여론이 김건희 여사의 ‘국정농단’을 거론할 때 그가 한 말은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될 것”이었다.
나라를 살리려 했다는 항변의 시간에, 그가 말하던 가치들은 시나브로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기자들은 대통령이 삼일절과 광복절에 ‘자유’를 몇 번 말하는지 숫자를 셌었다. 북녘까지 넓히자던 그 가치는 계엄 포고령이 나온 순간 허무한 구호가 됐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한밤의 형식은 향후 대통령을 자유주의자로 기록되지 못하게 한다. 버트런드 러셀이 말하길 “자유주의적 견해의 본질은 ‘어떠한 의견’을 주장하느냐가 아니라 의견을 ‘어떻게’ 주장하느냐에 있다.”
종전의 질서와 원칙은 하나하나 모순 여부를 진단받을 것이다. 대통령은 특검 도입이 예외적이어야 하고, 의혹도 객관적 단서로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외적이어야 한다면 계엄이 더욱 그렇다. 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이 투입된 계기를 객관적이라 평가하는 이는 소수다. 이제 사람들은 부수적인 퇴행도 그저 바라봐야 한다. 입시비리 기결수도 민주투사의 수감 소감을 밝혔고 정치권은 사면을 운운한다. 쓰나미가 지나간 뒤 쓰레기가 더 보이겠으나 이 또한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그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전에 본인의 과학과 진실을 반증하고, 명확함 속에 엄밀함을 잃었는지 의심해야 했다. 주변에 반대 증거 대신 “맞습니다”만 남겼다면 배격하려던 반지성주의를 실천한 격이다. 대통령은 계엄의 진짜 시나리오도 말해야 한다. 의도대로의 경고 조치였다기엔 지금 야당의 탄핵과 예산 폭거는 거론도 되지 않는다. 변한 게 있다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것이다.
기자는 대통령이 ‘양극화 타개’를 말했을 때 대통령실 사람들에게 “경제불평등 이외에 정치적 극단화도 포함하는 개념이냐”고 물었었다. 마음속으로, 대통령이 극단으로 가지 않길 내내 바랐던 것 같다. 고맙게 전화를 받아준 이들은 그런 개념까진 아닐 것이라 답해 주었다. 퇴거 소문이 돌던 계엄의 밤에 정신없이 기사를 보내면서도 그때가 떠올라 “이렇게 몰랐는가” 자조했다. 오류가 준 진실이 자유케 할 것이다. 다만 많은 이들에게 그 시간은 늦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