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선수들의 인터뷰 말미에 마침표처럼 붙는 한 마디다. e스포츠에서 팬은 특히 각별한 의미가 있다. 보는 스포츠로서의 역사가 길지 않기도 하거니와 수익 창출의 많은 부분을 노출도 기반의 광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팬(fan)이라는 단어는 광신도를 뜻하는 패너틱(fanatic)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정 대상에게 단순한 호감을 넘어서는 열광적인 애정과 몰입을 쏟는 사람을 우리는 팬이라고 부른다. 팬심의 계기는 다양하지만, 스포츠에서는 무엇보다 실력과 성적이 ‘입덕’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1인자, 최강팀이 최고의 인기를 함께 누리는 경우는 종목을 불문하고 매우 흔한 일이다. 팬들은 그들의 성취를 마치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동일시하고 기뻐하며 자존감을 충족한다.
그들의 실패와 좌절에는 마치 자기 일처럼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응원팀, 선수가 승리하고 성공을 거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응원대상을 같이 하는 팬들끼리는 자연스럽게 그 각별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며 소속감과 동질감이라는 또 다른 긍정적 정서를 나누게 된다. 그렇게 팬(fan)은 팬덤(fandom)이 된다.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타인의 직업적 성취를 향해 그렇게 열렬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새삼 경이로운 일이다. 이러한 경이로움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봉준호 감독의 명작 ‘마더’는 타인에 대하여 발현될 수 있는 인류의 가장 패너틱한 애정, 모성이 가지는 역설적 이기심과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기적일 때보다 누군가를 위하여 이기적일 때 더욱 거칠 것이 없어지기도 한다. 지나치게 뜨거운 팬심은 종종 비뚤어진 모성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 응원팀이나 선수를 향한 열렬한 에너지가 비뚤어진 모성처럼 과잉보호로 왜곡되면 영화 마더에서와 같이 부당한 희생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팀 내 인기선수를 옹호하고 추어올리기 위해 다른 선수를 부당하게 깎아내리는 행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과열된 팬심은 정서적으로 밀접한 응원 대상과 주변인인 공격 대상을 철저히 차별해 전자에는 복잡하고 관대한 잣대를, 후자에는 단순하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응원 대상을 위한 행위라는 심리적 정당화와 집단화된 동조는 가해에 대한 성찰을 흐리게 한다. 온라인 친화적인 종목 특성으로 인해 잔혹하고 불공정한 비난의 목소리는 당사자에게 여과 없이 닿는다.
다른 분야의 팬 문화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어리고 정신적 소모가 큰 e스포츠 종목의 특성상 부당한 여론의 공격에 특히 취약할 수 있다. 타인의 성취를 바라는 이타적인 정서가 또 다른 타인에 대한 지독한 이기심으로 발현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꿈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그 꿈이 내 스타의 동료와 경쟁자를 할퀴는 악몽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지영 한국소비자원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