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라는 격변기에 활동하며 ‘인간 희극’ 등 많은 걸작을 남긴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는 인물면에서도 흥미롭다. ‘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귀족 칭호와 귀족 문장을 스스로 사용했다. 하지만 세계 3대 전기 작가인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에서 출생기록을 고증한 결과 발자크는 귀족이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재산 형성에도 관심이 많아 끊임없이 투자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기도 했다.
발자크는 200년 전 프랑스 관료사회를 풍자한 ‘공무원 생리학’이라는 책도 썼다. 그는 공무원을 “사무용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뭔가를 끄적이는 자”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조금만 형식이 틀려도 기겁한다” “공문은 뻣뻣하고, 별것 아닌 것을 무게 잡고 말한다”고 풍자했다. 또 “떠들지 않고 정확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공무원의 전범이다” “빚을 지지 않고 근검절약한다”고 묘사했다. 만일 물려줄 사업체나 재산이 없고, 아이가 특출한 재능이 없더라도 “우리 아이는 공무원이 될 거야”라고 하지 말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자. 공무원 시험 인터넷 강의 시장 2위 사업자인 메가스터디는 1위 사업자인 공단기를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메가스터디의 인지도와 자금력을 감안할 때 양자가 결합하면 공무원 강의 시장이 지나치게 집중될 수 있다”며 인수를 금지했다. 기업결합도 막히고 적자가 계속되자 메가스터디는 ‘메가공무원’을 제3자에게 매각하고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 민원과 낮은 보수로 공무원의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지만 메가스터디조차 공무원 시험 강의 시장에서 발을 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직종의 장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의 중심이 민간으로 이동해야 하고, 공공의 역할이 비대해지면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동사무소 가면 공무원들이 맨날 놀고 있다” “공무원 하기 싫으면 그만둬라.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는 식의 말이 넘친다. 이런 감정적 반응은 공무원 제도 개선을 위한 건설적 논의를 가로막는다. 대한민국 주식회사가 있다면 직원은 공무원이고 주주는 국민이다.
괜찮은 직원이 회사를 떠난다면 회사와 주주로서는 손해 아닌가. 혹자는 다른 이로 메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경제부처에서 10년간 경험을 쌓은 유능한 인력은 하루아침에 양성되는 게 아니다. 사기업이라면 파격적인 보수를 제시해 우수 인력을 스카우트할 수 있겠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움직이는 공직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공무원으로서의 능력도 천차만별이어서 아무나 앉힌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실상 공무원 사회에서도 인사철마다 국·과장 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다들 유능한 직원을 데려오려고 하고, 일 안 하는 직원은 안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판 조회란 것이 나름 정확해서 민간으로 이직한 공무원이 놀기만 하던 공무원이었을 가능성은 작다.
대한민국 주식회사 직원의 직장 만족도가 낮고 퇴사가 빈번한데, 현재 불통의 최고경영자는 불법행위로 직무배제됐고 이사회는 언제 정상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일에 잘못이 없는 절대 다수의 공무원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고, 그래야 한다. 허영심이 있고 기발한 발상이 넘쳐났던 천재 발자크로선 공무원이 답답해 보였겠지만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재들이 대한민국에는 꼭 필요하다. 자신의 업무나 능력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에게 감사할 필요도 있고, 이들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박세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