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작업실 한편을 차지하고 앉아 조용히 나무를 깎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평일 오후, 시간은 늘어진 엿가락처럼 노곤하게 흘렀다. 은행나무와 등유 난로 특유의 냄새가 뒤섞여 포근하게 몸을 감싸니 소란한 세상일도 잠시 잊게 된다. ‘이 은은한 온기와 냄새도 스승님을 떠올리는 한 조각 기억이 되겠지.’ 작업을 멈춘 채 엷은 감상에 빠진 내게로 스승님이 다가오셨다. “함 선생, 책 좋아하잖아.” 시집 한 권을 작업대에 슬그머니 올려두신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주제와 분야를 막론했는데 세상을 향해 팔방으로 창을 낸 시인의 마음 크기를 짐작하게 했다. 방대한 정신 에너지가 섬세하고도 밀도 있게 활자로 압축되고 두께 1.5㎝ 남짓한 종이 묶음에 담겨 있다니. 시집을 든 손에 또 다른 무게가 전해졌다. 문학은 가히 하늘 너머 우주에 비견되는 인간이 만든 우주라 할 만하다. 1000가지 구경거리가 있어도 관심사가 먼저 눈에 띄듯, 활자의 행렬 속에서 유독 반짝거리는 한 구절을 찾았다. ‘삼시 세끼 밥 잘 먹고 훈훈한 방에서 질펀히 잠자고 일어나 일감 걱정 없이 사는’이야말로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삶은 ‘태어났다’는 한 문장으로 시작해 가지를 뻗고 서로 엉켜 부러졌다가 다시 새순을 내고 자라나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단순하고 분명한 삶의 행복은 여러 유혹과 복잡한 욕망에 휩쓸린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안온한 일상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러한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새로운 욕망에 기웃거리느라 행복의 본질을 잊었는지도, 또 어쩌면 누려보지 못했기에 유토피아의 한 장면처럼 막연히 그려보면서 기대와 체념을 오가는지도. 인생의 갖가지 우여곡절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루를 여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삼시 세끼 잘 먹고, 충분히 잠을 자고, 일감 걱정 없이 사는 안온한 일상에 가닿기를, 오래 맞이할 수 있기를.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