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 尹·韓, 불화로 시작해 파국으로 끝났다

입력 2024-12-17 04:00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를 떠나며 권성동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을 유지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6일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장에 나와 가볍게 한숨을 쉰 뒤 “당대표직을 내려놓습니다”라고 말했다. 7·23 전당대회에서 ‘62.8%’ 지지로 출범한 한 대표 체제는 다섯 달이 채 안 된 146일 만에 끌려나가듯 끝을 맞았다.

‘한동훈 체제’의 키워드는 ‘국민 눈높이’와 ‘변화’였다. 4·10 총선을 앞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김건희 여사 리스크’ 대응 기조로 언급했던 말도 ‘국민 눈높이’였다. 김 여사 ‘방탄’이 국민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및 친윤(친윤석열)계와의 차별화를 예고한 것으로 이 시점에서 이미 ‘윤·한 갈등’은 예정돼 있었다.

한 대표는 줄곧 기존의 여권과 다른 길을 걸으려 했다. 그는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지난 6월 23일 제3자(대법원장)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당대표 취임 직후에는 윤 대통령이 광복절에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을 추진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대통령실은 “사면·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여권 투톱의 관계는 이후에도 아슬아슬한 장면이 빈번하게 연출됐다. 한 대표는 의료 사태와 관련해 ‘2026학년도 의대 증원 1년 유예’를 중재안으로 제시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단박에 거절했다.

윤·한 갈등의 밑바닥에는 줄곧 김 여사 문제가 깔려 있었다. 지난 9월 ‘명태균 사건’이 불거지면서 김 여사 리스크가 커졌을 때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한 대표가 독대를 요구했고, 윤 대통령이 거절한 사실이 연이어 공개되며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한 대표는 10·1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김 여사 활동 중단과 용산 인적 쇄신, 한남동 라인 정리를 꺼내들었다.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이후에는 ‘3대 해법’을 공개 제기하며 대통령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같은 달 21일 면담을 했으나 이미 멀어진 간극만 확인했다.

명씨 녹취록 파문으로 여권 지형도 흔들렸다. 윤 대통령과 명씨가 공천 관련 대화를 한 녹음파일이 공개돼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한 대표는 “독단적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 반감도 커졌다”며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한 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자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도 완전한 결별을 선언했다. 한 대표는 “위헌·위법한 계엄”으로 규정하며 계엄 해제 요구에 앞장섰다. 윤 대통령이 거취를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히자 한 대표는 내년 2~3월 자진사퇴 로드맵을 담은 ‘질서 있는 퇴진’을 대안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차라리 탄핵심판을 받겠다”고 반응했고, 한 대표도 지난 12일 ‘탄핵 찬성’으로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한 대표가 혼란을 키우며 스스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혔다는 내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 대표는 결국 친윤계의 집단 반발과 선출직 최고위원 총사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두 사람은 줄곧 서로 반목했지만, 함께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입술과 잇몸 관계였다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국회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이 저를 지키려고 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 저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