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에만 기대다… 재계 ‘국회 증언법’ 발등의 불

입력 2024-12-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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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거부권에 기대 ‘국회 증언법(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을 막으려던 재계의 구상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흐트러졌다. 가결 이후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에는 거부권 외 국회 증언법 시행을 막을 대책은 무엇이냐는 회원사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경제단체 측은 법안이 입법 마지막 단계에 이를 때까지 조용하다가 이제 와 경제단체에 책임을 돌리는 재계 분위기에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한경협, 대한상의 등은 당초 여당 건의를 통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증언법 시행을 막는다는 계획이었다. 경제단체들은 지난달 28일 국회 증언법이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시점을 전후로 국민의힘 측에 해당 법안 관련 기업들의 우려를 전했다. 기업의 기밀 유출과 기업인의 경영 활동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증언법은 개인정보·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서류 제출 및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기업인이 해외 출장 중이거나 질병을 치료 중일 땐 화상 연결 등 대체 수단을 통해서라도 국회에 원격 출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정감사나 청문회에 불출석하는 증인에게는 동행명령을 통해 출석을 강제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이에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 증언법 본회의 통과 당일 윤 대통령에게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도 탄핵소추안 표결 전날인 13일 전임자와 같은 견해임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14일 국회가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하면서 거부권 행사 예정이었던 주체가 사라졌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도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주어진 실질적 권력의 크기, 야당의 압도적 의석 등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작다는 게 중론이다.

거부권 행사가 없다면 국회 증언법은 이르면 내년 3월쯤 시행될 전망이다. 재계는 비상이 걸렸다. 4대그룹 한 관계자는 “경제단체가 안일하게 거부권에만 기대다 재계에 치명적인 법안이 그대로 시행되게 생겼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이 목소리 내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경제단체가 대리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 측은 “상법·세법 개정안과 달리 국회 증언법에 대해선 본회의 통과 직전까지 기업들의 관련 목소리가 거의 없었고 이에 따라 의견 취합 과정도 부재했다”며 “기업들도 잘 모르고 있다가 이제 와 경제단체 탓만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