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사퇴했다. 최고위원들이 전부 물러나 불가피하게 그리해야 했지만, 사실은 쫓겨난 것이다. 그를 몰아낸 건 탄핵 반대표를 던진 85명, 당의 주류임을 자처하는 친윤계 의원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민의힘 의원총회 풍경은 기이했다. “한 명씩 일어나 무슨 표를 던졌는지 밝히자”며 찬성표 색출을 주장할 만큼 격앙돼 있었고, 곧바로 한동훈 책임론을 꺼내더니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모두가 경악했던 비상계엄은 윤 대통령이 선포했는데, 친윤 의원들은 그 책임을 한 대표에게 지우는 해괴한 논리를 택했다.
탄핵 반대에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그럼 비상계엄이 정당했다는 거냐?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는데 어떻게 하자는 거냐?’는 질문에 이들은 그동안 답하지 않았다. 앞뒤 맥락 없이, 뚜렷한 대안도 없이 “탄핵만은 막아야 한다”는 막무가내 주장을 폈고, 결국 통과되자 계엄 해제와 탄핵 가결을 주도했던 당대표를 몰아내며 “단일대오”를 외치고 있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당권’과 ‘진영’이 있을 것이다. 한 대표를 용병이라 폄하한 데서 보듯,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8년 전 태극기 부대 같은 강성 지지층에 기대 극단적 진영 논리로 정치생명을 지키려 한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원했던 결과 앞에서 여당이 보이는 행태는 집권세력이라 믿기 힘들 만큼 시대착오적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국정 혼란은 ‘친윤’임을 내세웠던 이들부터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사태였다. 국민의 삶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데 대한 사과와 자성도 없이 오히려 민심을 거스르며 자신들의 왜소한 울타리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 어떻게든 국정 공백을 막아 경제와 안보의 위기를 타개하고 국민의 일상을 회복하려 뛰어다니는 집권당의 당연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사태를 부른 근원적 배경인 정치의 실종, 극단적 진영 대결의 폐해를 반성해야 할 때에 당 내부에서 볼썽사나운 주도권 쟁탈이나 벌이며 국민과 더욱 멀어지는 길을 가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금 맞닥뜨린 당의 위기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던 쇄신의 주문과 실천할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국정 안정을 위해 집권당의 역할을 대승적 자세로 감당하며, 당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환골탈태의 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 민심을 되찾을 쉬운 길은 없다. 강성 지지층에 안주하는 진영 정치는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되돌아올 뿐이다.